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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4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4 조회수312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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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과는 정말 많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위대한 예언자의 탄생은 하느님의 뜻과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충돌합니다. 

요한의 탄생이 예고되던 날, 지성소에 들어간 사제인 아버지 즈카르야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의심하고 불가능하다 생각한 순간 그는 하느님 앞에서 말을 잃어버립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해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의 사제가 어겼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잉태되었고, 불가능을 뚫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남을 인정받는 날, 그의 이름을 두고 또 한번 하느님과 인간은 충돌합니다. 


그 때 터져나온 아이의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아이의 이름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름이 요한입니다.
그는 사람의 불가능한 조건을 넘어 태어난 아이입니다.
또한 그는 가문의 전통을 버린 이름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났으나 전혀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 요한인 것입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고 말문이 닫혔던 아버지는 그 아이의 이름을 인정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하느님의 뜻을 믿지 않았던 사람, 자신이 인정하지 않았던 아이의 이름을 하느님이 전해주신 대로 인정하는 순간 그의 입은 열립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른 순간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 됩니다. 하느님이 주신 사람임이 인정되는 순간이며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이를 통해 요한은 세상에 불가능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그래서 세상에 안된다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장본인으로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등장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아이 요한은 우리가 아는 대로 세례를 베푼 사람이 됩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의 세례는 죄를 씻어내고 하느님을 맞이하는 준비의 세례입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분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엘리사벳에게서 요한이 나온 것 처럼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시킨 것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면 죄인이 되고, 결국 벌을 피하지 못하는 운명의 사람들처럼 그들 스스로를 나누고 가르며 살던 사람들에게 죄의 회개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그 말 앞에 마음을 바꾸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낸 것이 요한입니다. 그의 말이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요르단 강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지녔던 모든 전통을 넘어서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됩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주님이 세례자 요한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주님은 사랑을 이야기하시고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그 전에 우리에게 강직한 성품과 목소리로 회개를 이야기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준비시킨 세례자 요한을 이렇듯 주님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느님을 정작 알지 못하던 그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과의 만남을 준비시킨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든 우리에겐 불가능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도 몰랐던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으로 우리가 향하도록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신앙의 깨달음이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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