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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11년 6월 26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4 조회수425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11년 6월 26일

 

요한 6, 51-58.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복음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말씀은 초기 신앙공동체가 성찬에 대해 믿고 있던 바를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한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마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서 머무른다.’ 신앙인들은 성찬 안에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실천을 그들도 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자 제자들은 각자 자기의 생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믿으면서, 그들은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과 함께 하였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의 식탁에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루가 22, 19)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 식사 중에 그들과 함께 사셨던, 그들의 스승에 대해 회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상한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회상은 그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되었고, 후에 그것이 책으로 엮어져, 오늘 우리가 가진 네 개의 복음서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복음서들은 초기 신앙공동체가 성찬을 중심으로 예수님에 대해 기억하며, 이야기한 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병고를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가르치던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친 것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겨서 하신 일이었다고 복음서들은 말합니다.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예수님이 고친 이야기가 요한복음서(9장)에 있습니다. 그 불행이 누구의 잘못에 대한 벌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저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며 고치고 살리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회상에 의하면,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들은 유대교가 하느님이 버렸다고 낙인찍은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들과 상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그들과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양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목자와 같은 하느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대교는 하느님이 율법을 주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벌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율법을 범하면서, 율법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절대적 잣대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자녀 되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셨고, 신앙인은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분이 하신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그 믿음과 그 실천 안으로 제자들을 초대하는 성사(聖事)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자비를 생애 끝까지 실천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분의 몸과 피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여, 우리도 그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우리도 그 몸이라는 빵을 먹고 그 피라는 포도주를 마셔서,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몸은 인간관계이고 피는 생명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졌던 인간관계와 예수님이 사셨던 생명을 우리 안에 살려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신 일은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쉽게 버립니다. 그런 우리의 관행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극복하게 하는 성사입니다.

 

성찬에서는 빵과 포도주만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던 하느님이 달라집니다. 하늘 저 멀리, 높이 홀로, 고고히 계시면서 우리를 지배하고, 심판하는 분이라고 믿었던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변합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사는 그분의 자녀로 변합니다. 자기 한 사람 잘 되자고 재물과 권력을 탐하던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아무런 대가없이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면서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이웃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겨야 하는 형제자매입니다. 성찬은 대자연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변하게 합니다. 대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하고, 버리고 가면, 되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베푸신, 우리 삶의 무대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은혜로운 것이기에, 우리가 깨끗하게 보존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셨다는 사실을 그들도 체험하며 살아야 하는 대자연입니다.

 

이렇게 성찬에서는 모든 것이 변합니다. 우리의 시선도 변합니다.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희생적 사랑,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지는 관대하고 희생하는 마음,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살신성인(殺身成仁), 이런 현상들 안에 성찬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일을 보게 해줍니다. 크신 하느님의 자비 안에 사는 인간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현장을 외면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그만큼 보지 못합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내어주고, 쏟으신 예수님의 삶입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은 우리도 같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고, 무상으로 주어진 은혜로운 기회입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그 하느님의 힘이 우리 안에도 충만하여, 우리도 같은 실천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 주변에 나타나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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