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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4 조회수30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7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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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신 백인대장의 믿음이 시작되는 자리의 말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백인대장의 청은 그 내용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그는 그의 가족이 아닌 그의 소유일 뿐인 종을 위해 빌고 있습니다. 그 종이 얼마나 쓸모 있었는지 다시 회복시켜 이용하고자 했다고 보기에 그에게 이 종은 물건이 아닌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그 종의 고통을 몸소 느끼고 있는 듯 전해집니다. 

몹시 괴로워하는 종을 고쳐달라는 이 이야기에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님에도 바로 일어서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청하는 이가 가시겠다는 주님의 걸음을 막아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께 무엇인가를 청하려고 하는 사람, 그렇다면 그 주님의 발걸음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여 그분이 하시는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주님의 은총인데도 이 백인대장은 주님을 모실 만한 자격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종을 살리려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그는 또 다른 종의 모습을 스스로 자인하며 주님의 발걸음의 수고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그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주님의 칭찬이 이어지는 지점에 이 백인대장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그는 종의 제도를 이용하여 사람을 소유물로 지닐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종 하나를 살리겠다고 주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 앞에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말하고 그는 주님 앞에서 종과 같은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찾아온 이유가 더 놀랍습니다. 그는 주님의 능력을 압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는 눈요기에 좋은 주님의 능력을 바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와 같은 마음을 지니신 하느님을 알고 고백하는 셈입니다. 그는 참으로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아는 이였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였습니다. 주님의 이 선언은 그가 주님께 온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하느님의 진실을 드러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 보면 주님의 기적의 참된 모습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기적이란 우리 삶에서 우연히, 아니면 지극정성으로 체험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좋고 조금 더 화려한 기적들에 귀를 기울이고, 체험이나 성체성사를 통해 그 기적들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들을 자주 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적들을 살펴보면 백인대장 종을 낫게 하신 기적에서 주님은 그 종을 보지 못하십니다. 함께 가지 않으신 셈입니다. 또한 주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하셨을 때 그 장모는 주님 발치에 머물지 않고 주님께 하려 했던 음식 시중을 듭니다. 사람들이 데려온 마귀들린 사람들을 낫게하시고는 그들과 함께 온 이들이 함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십니다. 

주님은 능력을 보여주시어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백인대장이 주님을 찾은 이유도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일상을 살아움직이게 하고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가 자신의 소유물일 뿐인 종을 살리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이 백인대장의 진심은 먼 길을 스스로 걷는 수고와 자신을 낮춤으로서라도 종을 살리겠다고 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어울어낸 모습입니다. 


그런 주님이시기에 모든 것이 병들고 마귀에 들린 이들을 모두 자신의 생활로 되돌려주시는 기적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속의 모든 이는 각자 자신의 집으로 행복하게 들어가는 모습으로 남은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의 기적의 능력을 따라 다니는 이들은 백인대장의 모습을 잘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주님의 말씀을 따랐기에 그 종을 보기 위해 바쁜 걸음을 홀로 걸었다는 것, 그리고 도착한 집에서 그는 아프던 종이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시몬의 장모는 병이 낫고 대접을 했고, 마귀들린 이들을 데려왔던 사람은 다시 회복한 그들과 집으로 향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병고는 그분께서 맡으셨고 우리는 삶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진심을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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