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개와 용서" - 6.2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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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6-25 | 조회수53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1.6.25 토요일 남북통일 기원미사(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 신명4,29-5,2 에페4,29-5,2 마태18,19ㄴ-22
"회개와 용서"
제 집무실 옆 수도원을 들어가기 위한 나무문에 요즘 달아놓은 나무 팻말의 ‘수도승 공간’ 이란 글귀가 신선합니다. 공간이란 말을 대하는 순간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 상쾌했습니다. 공간은 생명입니다. 사람들이나 나라간의 싸움도 결국은 공간 확보를 위한 싸움입니다. 많은 이들 역시 넉넉한 공간을 찾아 수도원에 옵니다.
사랑 역시 구체적으로 서로의 공간을 확보해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단어가 시간과 인간이었습니다. 시간 역시 생명입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시간에 인색한 수도자들입니다. 돈은 줘도 시간은 주지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것은 바로 생명을 나누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또 空間, 時間, 人間, 한자말이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사이(間) 중심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늘(時間) 우리와 함께(空間)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지금(時間) 여기(空間)라고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이 하느님을 향한 개방이, 하느님께 돌아감이 회개입니다. 말 그대로 ‘살기위해’ 회개입니다. 하느님께, 나에게 돌아가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게 회개입니다. 한 번의 회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회개의 여정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이 운명을 돌려주실 것이다.”
바로 위의 이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두 사람이라도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들어주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주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도 함께 계십니다. 공동기도의 위력을 말해줍니다. 회개가 꽃이라면 용서는 열매입니다. 회개와 용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은혜로운 시간이 바로 우리가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미사와 공동성무일도의 전례기도시간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나도 너도 ‘살기위해’ 용서요, 주님 역시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그 사랑으로, 그 용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용서하다보면 주님 은총으로 마음의 용서도 뒤따릅니다.
이래야 일흔일곱 번의 지칠 줄 모르는 용서가 가능합니다. 삶은 평생회개의 여정이자 평생용서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때 회개요 회개할 때 저절로 용서의 열매요 내외적 일치와 평화입니다. 이래야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됩니다.
회개가 하느님과의 수직적 소통을 의미한다면 서로간의 용서는 형제들 간의 수평적 소통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소통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용서를 통한 원활한 소통이 일치와 평화의 나를,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바로 이 미사의 은혜입니다.
남북통일에 앞서 위정자들은 물론 남한 내부의 회개와 용서가, 통일이 우선임을 봅니다. 가까이 나부터, 또 내가 속한 공동체부터 회개와 용서의 삶을 살아갈 때 남북통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회개한 우리들에게 용서와 더불어 일치의 공동체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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