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성체성혈대축일>
이 앞에 우리 어린이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성체를 영하는 날입니다. 또 성혈도 같이 영하는 날입니다.
이 성당 초대 본당신부님으로써 51년 동안 사목하셨던 임 가밀로 신부님이 우리 어린이들만 했을 때 첫영성체를 했는데... 옛날에는 첫영성체를 하기 바로 직전에 신부님이 물어 보십니다.
“니 소원을 얘기해 보아라. 그러면 그대로 될 것이다.”
임신부님이 두 가지 소원을 얘기했어요.
그리고 나도 역시 옛날에 첫영성체 받을 때 미국신부님이 저한테 물었어요.
“웅열아! 니 소원이 뭐냐?”
임신부님도 나도 두 가지 얘기했어요.
임신부님은 두 가지를 뭐라고 했느냐?
첫 번째 “저는 꼭 사제가 될 겁니다. 사제가 되더라도 그냥 사제가 아니라 성인사제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게 해주십시오.”
두 번째, 사제가 되어 살아가면서 사도요한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한평생 살았듯이 저도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그래서 임신부님은 그대로 되었어요.
나도 아홉 살 때 첫영성체 할 때 두 가지 소원을 말했는데
첫 번째는 뭐냐?
“우리 반에서 싸움 제일 잘하게 해주십시오.”
두 번째로는 “대통령이 되게 해주십시오.”
처음부터 임신부님과 아주 싹수가 달랐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이따가 신부님이 물을 거예요.
이담에......소원 두 가지를 꼭 얘기해~~
지금부터 잘 기억하고 있어요~~
잘 생각하고 있어야 돼~~
속으로 얘기하는 거야 속으로......속으로 누구한테?
내안에 들어오시는 예수님한테 소원을 두 가지를 얘기해야 돼요.
뭐~~ 뭐~~ 얘기할건가?
신부님처럼 싸움 제일 잘하게 해달라는 그런 소원은 절대 안 들어 주시는 거예요.
응~~
그런 거 말고 임신부님처럼 거룩한 소원을 이따 얘기 하셔야 돼요.
신자들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갖가지 사는 모습이 다르듯이~~
신심행위도 보면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영성체 할 때 지금처럼 손으로 했습니까?
아니면 입으로 했습니까?
입으로 했지요?
또 아주 옛날에는 이렇게 성당마다 난간이 있어서 난간에 쭈욱 무릎을 꿇고 매달려 있으면 사제가 돌아가면서 입에다가
‘그리스도의 몸’
또 신자들이 적었을 때는 반드시 성혈까지 찍어서 입에다가 넣어줬었어요.
그런데 공의회 이후에 손바닥으로 하는 것을 허락을 합니다.
지금도 입으로 하는 것이 불법이예요? 아니예요?
입으로 하는 것이지만 손바닥으로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은 아주 그것이 거꾸로 되어가지고
다 으례껏 손바닥으로 하는 줄 알아요.
왜 입으로 하는 거를 손바닥으로 할 수도 있다 했느냐?
위생적인 것 때문에 그래요.
아주 간단히 얘기하면.......
신부님이 성체 입에다 넣어주다가 침이 손가락에 묻어서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요즘 하도 뭐 병들이 많으니까~~
위생적인 것 땜에 손바닥으로 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있지만 그것이 이젠 다 손바닥이 원칙이고 어쩌다가 입으로 하는 사람 생기고 그렇게 돼버렸어요.
아무튼 입으로 하는 모양이든 손바닥으로 하는 영성체든~~
똑같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우들이 영성체하는 모습을 좀 여러 가지로 좀 구분을 했는데 여러분들은 그중에 어디에 속하는가?
첫 번째가 사모형이 있어. 사모형
누구를 좋아하는 것을 ‘사모한다’ 그러지요?
특히 입으로 하는 형태 가운데서 사모형이 있어요.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면 혀를 조금 이렇게 내밀고, 성체 받아먹고 가면 되는데......
이 사람은 신부님을 너무 너무 사모하는 거야.
그러니깐 입은 쩍 벌리고 성체가 혓바닥에 올라갔는데도 갈 생각을 안 해요.
신부님 쳐다보느라고.......
제가 지금은 이렇게 다 뭐 망가졌지만, 옛날에 아주 젊은 시절에는 괜찮았어요.
아, 그전에 보좌신부 때는 아주 대단했어요.
주임신부님이랑 같이 이렇게 성체를 나눠주면 내 줄이 훨씬 더 길어.
그리고 가끔가다 좀 도가 지나친 자매들은 평일미사건 주일미사건 한복을 이쁘게 차려입고,,,,,,
눈에 띄게 하려고 한복을 입고 나와서 손으로 할 수 있는데도 구태여 얼굴이랑 눈 한번 마주쳐 보려고 고개를 들어서 혓바닥으로 하는 거예요.
아무튼 이런 사모형이 있어요. 가끔가다 보면.......
그담에 두 번째가 뭐냐?
족집게 형이 있어요.
손바닥으로 하는 거 중에서....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하면서 손바닥에 주기도 전에 지가 뺏어다가 먹고 들어가요.
가끔 그런 황당한 사람이 있어요.
그담에 인제 다시 입으로 하는 형 중에서 불도끄형이 있어.
이 입이 제일 큰 개가 부루도꾸예요.
입으로 하려면 혀끝을 조금 내밀어줘야만 그 위에 살짝 올려놓죠.
그런데 이 부루도꾸형은 입만 쩍 벌리고~~
들어왔다 나갈 테면 나가라~~ 이거야.
그럼 아무리 고 안에다가 성체를 잘 떨어뜨릴려고 하다가도 꼭 나올 때보면 침이 묻어요.
침만 묻으면 되나?
자매들 같으면 꼭 루즈가 꼭 묻어~~
아주 기분이 영 찝찝해!
또 조금만 늦게 빼면 물려.
내 사제생활하면서 세 번 물려봤는데~~
와~ 오지게 아픕디다!
이 부루도꾸형의 반대가 뭐냐?
세빠트형이 있어~~
난 세상에 사람 혓바닥 길다~~ 길다~~ 그렇게 긴지 몰랐어.
혓바닥을 내밀어도 좀 보기 좋게 내밀어야 되는데 그저 목젖 있는 데까지 길게 빼물고 거기다 올려 달라 이거죠!
아주 그 위에 올려놓을 때는 섬찟해요~~
이게 세빠트형이야.
그담에 이제 손바닥으로 하는 거중에 무슨 형이 있느냐?
낙서형이 있어요.
‘그리스도의 몸’ 하고 줄려고 하다가 제가 멈칫해요.
손바닥이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어.
손바닥에 써 있는 거, 무슨 뭐 곗돈 받을 날짜서부터~~
슈퍼마켓 전화번호서부터~~
볼펜 똥이 질질 흘린 그 손바닥을 내밀면서 그 위에다가 성체 올려 달라 이겁니다.
아~~ 물론 왼쪽에다 뭐 쓸 수 있어요.
그럼 오른쪽 손은 뭐합니까?
양손이 더러울 때도 있죠?
그럼 혓바닥은 뒀다 뭐할 거예요?
상식이죠!
아주 옷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은 자매가 그 더러운 손바닥 내밀면 내가 위아래 다시 훑어봐!
내 주기는 줘~~
또 안주면 삐져가지고 또 냉담할까봐....
근데 아무튼 주면서
‘주님 죄송합니다. 똥꾸뎅이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이게 낙서형이야.
그담에 또 질식형이 있어. 질식형.
숨 못 쉬게 하는 게 ‘질식한다’ 그러죠?
성체를 받으려면 손바닥을 좀 제대로 딱 펴서 줘야 되는데 꼭 이렇게 오므리고 내밀어요.
근데 나이가 드신 양반일수록 손바닥이 오무려져.
이게 잘 안 펴지나봐.
근데 젊은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오므리고 내밀면 아주 짜증나요.
아주 그 속에다 삐집고 끼어줄려면 아주 그냥 화가 나죠.
그 예수님 질식하는 질식형.
그담에 하늘형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볼 때는 수평으로 손을 내미는 거 같은데 앞에서 보면 앞이 올라가. 이게 하늘 형이야.
그담에 땅형이 있어.
밑으로 내려요.
그러면 이렇게 올리거나 이렇게 내린 손바닥 위에 성체를 올려주면서도 불안하지요.
‘아이구 저러다 우리 예수님 미끄러져서 발목 부러지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단 말이예요.
그담에 또 골키퍼형이 있어요.
성체를 받으려면 사제 앞에 한발 바싹 다가서서 사제가 좀 주기 편하게 좀 바싹 다가서야 되잖아?
이 골 키퍼형은 꼬옥 서너 발 뒤로 물러서가지고~~
엉덩이만 쭉 빼고 ‘던져, 던져.’
지가 뭐 골키퍼라고 뭘 던져~~ 던지기는~~.
가까이 오면 신부가 뭐 잡아먹나?
‘던져~~ 던져~~ 던져~~’
이 골키퍼형의 반대가 뭐냐?
신부 턱치는 형이 있어.
어떤 때는 다가서도~~ 다가서도~~ 너무 다가서서 가끔가다 그 여자 그거랑 내 배랑 닿아요.
아주~~ 민망스럽게 아주 그냥~~ 뭔 줄 알죠?
그리고 또 성체를 받으면 그냥 가면서 먹으면 되는데 꼭
“아멘!”
손바닥을 위로 치니깐 내가 두 번 턱 맞아본 적 있어요.
아무튼 뭐 지금 몇 가지 얘기를 안했지만 이렇게 영성체하는 모습이 달라요.
가톨릭을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교회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영성체할 때 모습마저도 똑같지 않아요.
적어도 우리 교우들은 한번정도는 내가 영성체하는 모습이 잘못돼서 신부님이 나 때문에 분심 든 적은 없는가?
적어도 한번은 자기의 영성체하는 모습을 뒤돌아 봐야 됩니다.
어떤 신부님은 키가 커요.
그러면 그 신부님 주기 편하게 이걸 좀 올려줘야죠.
어떤 신부님 키가 작아요.
그럼 편안하게 밑으로 좀 내려줘야지~~
그럼 키는 이렇게 큰 신부님한테 손바닥을 쭉 밑으로 내리면~~
허리를 굽혀서 저 밑에까지 내려줘야 된단 말이예요.
키가 작은 신부님은 적당하게 밑으로 내려줘야지~~
신부님 코앞에까지 이렇게 올려 놓으면 어떡하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올바로 영성체하는 것도 큰 애덕입니다.
적어도 신부님이 나 때문에 성체를 주실 때마다 분심이 든 적이 없는가?
근데 교우들 제일 많이 하는 게 제가 볼 때 손을 제대로 못 펴~~
쫙 펴주면 되는데 꼭 이렇게 오므리고 내밀어요.
그런 게 제일 많아요.
이따가 한번 봅시다.
이따 오늘도 무슨 형이 나올 건가 제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자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우리 천주교신자들 행복합니까?
네~에~~
대답안하는 사람들이 지금 서른다섯 명인데......
천주교신자들이 행복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두 가지가 있기 땜에 그래요.
성체성사가 있는 것이 첫 번째고, 그 다음에 성모님이 계신 것이 두 번째죠.
그래서 우리 교회영성의 두 가지의 핵심은
교회 중심에는 성체가 있고
그 성체를 둘러싸고 있는 교회의 울타리가 바로 성모신심이예요.
그런데 실지로 성체를 영할 때마다 우리들이 행복한가?
눈물이 날정도로 기쁜가?
묵주기도 할 때마다 정말 엄마가 내 곁에서 내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듣고 계시고~~
아들이 부탁하는 것을 정말 엄마가 사랑스런 눈으로 보고계시다고 하는
그 느낌을 받으면서 묵주기도를 내가 하고 있는가?
모든 크리스찬들이 다 성체신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50절에서 58절에 보면 예수님의 유언 중에서도 최고의 유언!
예수님이 하신 말 가운데서 똑같은 말을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한데는 여기밖에 없습니다.
그게 뭡니까?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이 이야기를 무려 예수님은 여섯 번을 반복을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 가운데 이렇게 다섯 번 이상 반복한 그 말은 주님의 피,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거다.’ 한 이
이야기가 예수님의 유언 중에서 최고의 유언이요, 최상의 유언인데~~
세례 받은 크리스찬들은 그것을 다 지키고 살아가는가?
세례 받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개신교신자를 포함해서 천주교신자 모두를 뜻합니다.
그래서 성체를 바라보는 세 가지의 눈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체의 의미를 전혀 모르거나 상징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밖에 사람들, 세례 안 받은 사람들은 성당 어쩌다가 친구 따라서 와가지고 사제가 똥그란 빵을 들고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고~~
나중에 또 신자들이 줄서서 나와 가지고 그거하나씩 얻어먹고 들어가는 거를 볼 때마다 이해가 안갑니다.
어떤 예비자가 처음 성당에 나왔어 나와 가지고서는 이렇게 앞사람을 보니까 뭐 하나씩 얻어먹고 들어온단 말이야~~
그래서 또 가만히 앉아있으면 실례가 되는 줄 알고 남의 집에 와서~~자기도 줄서서 나왔어요.
신부님들은 딱 보면 알죠?
“영세 받으셨어요?”
뭐 손 내미는 게 이상해~~
이렇게도 내밀고 우물우물하는 게 이상해.
“영세 받으셨어요?”
“아니요. 성당 처음 나왔는데요.”
“아 그러면 교리배우시고 세례 받으신 다음에 이거 드리는 겁니다.” 이럭하면 대개는 다 알아들어요.
근데 또 어떤 사람은 그냥 가라 그러는데 그렇게 서운한 거야~~
돌아가 가지고 자기 인도한 사람 붙들고~~
“아이 나 성당 더러워서 못나오겠어. 거 보아하니깐 몇 푼 돼보이지도 않는 쬐끄만 거 하나 주면서~~ 아니 어디가든지 손님한테 먼저 주는 건데~~ 어떻게 지들끼리만 먹고 말이야~~달라 그래도 주지도 않는다고.....”
주고 싶죠~~
그러나 그 사람은 성체가 뭔 질 모르잖아요~~
이렇게 외인들은 이방인들은 성체성사가 뭔지도 모르고 그 의미가 뭔 질 몰라요.
또 상징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개신교신자들입니다.
일 년에 몇 번 빵 사다가 상징으로만 이렇게 나눠줍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에 중요하게 여기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 년에 몇 번 상징적으로 이렇게 나눠먹는 그 빵은 성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런 영신적인 유익을 주지를 못합니다.
그담에 두 번째 성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영성체하는 사람들.... 이게 바로 우리 대부분의 천주교신자들이 여기에 속해있습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교리 때 배웠죠.
머리로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체 영할 때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분심가운데 영성체함으로써~~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친밀한 사귐을 나누고 있지를 못합니다.
아무런 준비된 마음 없이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영성체를 합니다.
죄가 진홍색처럼 붉어도 미사 전에 성사 볼 생각을 안 합니다.
성사 안 보고 성체 안 영하면 돼!
요런 심보 갖고 있는 신자들 많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는데 일 년 내내 성체 안영하는 신자들 있습니다.
감곡에도 있고 어느 본당에서든지 있습니다.
성사 보는 것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저안에 쭈그리고 들어가 앉는 거 싫어하는~~
얼마나 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인간의 마음보인가?
성사 보는 것이 귀찮아서 아예 성체 안영하고 안 나가면 된다!
그건 마귀 생각이고 마귀한테 사로잡혀있는 생각입니다.
영성체를 한 후에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기 자신이 감실이 된 사실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해나갑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성체를 영했기 때문에 영성체한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성체는 그들에게 아무런 힘이 못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성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체를 생활화하는 사람들 성체신심이 내 뼛속 깊은 곳까지 녹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체가 참으로 예수님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성체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주시고 변화시켜주신다고 하는 것을 미사 때마다 체험을 합니다.
그래서 자주 성체조배를 하게 되고/ 자신의 모든 일을 예수님과 의논하게 되고/ 또 자주 미사 영성체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성체신심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 이상의 일을 하게 됩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됩니다.
성체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미운사람을 오래 담아 둘 수가 없습니다.
성체의 힘으로 미운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즉시즉시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점점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렇게 제가 사목을 하면서 성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세 가지로 저는 구분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성체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의 시선, 그리고 상징적으로만 알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의 시선
그리고 대부분의 천주교신자들이 이 두 번째 시선에 속한다고 그랬지요?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영성체하는 사람들, 이게 대부분의 천주교 신자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정말로 성체신심을 생활화해서 영성적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 성서에는 성체는 천상의 약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아도, 설령 천수를 다해 살 수 있는 약이 있다 하더라도 성체만도 못합니다.
성체는 영생을 보장해줍니다.
우리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런 민담을 아실 겁니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오만 약을 다해드려도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노심초사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지나가는 어느 객이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던집니다.
허벅지살을 베어서 약이랑 같이 섞어 그것을 아버지 입술에 떨어뜨리면 아버지가 회생할 것이다.
아들은 그 말을 정말 믿었지요.
그래서 시퍼런 부엌칼을 가지고 자기 허벅지 살을 도려냅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철철 흐르는 자기 허벅지 살을 약탕기 속에다 집어넣고 약이랑 같이 약을 냅니다.
그래서 다 죽어가는 아버지 입술에 한 방울 똑똑똑...
떨어뜨리니R 아버지가 살아나더라~~
하늘이 감동해서 아버지를 살려주더라~~
성체는 반댑니다.
성체는 죽어가는 자식새끼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미사 때마다 당신의 살을 자르고, 쪼개서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서 미사 때마다 주시는 하느님의 살입니다.
천상의 약입니다.
산삼을 몇 뿌리를 먹고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백년을 못 넘기는 것이 인생이지만~~
성체를 영할 때마다 우리는 천국의 문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오상의 비오신부님께서는 13년 동안을 미사를 못 드리는 감금생활을 당했었습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한번 이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13년 동안에 교회당국은 비오신부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은 악령의 역사가 아니라 비오신부님의 그 오상은 성령의 역사임을 선포하노라 하면서 미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때 미사를 드리시고 난 다음에 하신 얘기가 뭐였느냐?
“나는 태양이 없이는 살아도 성체가 없이는 못삽니다.” ~답변에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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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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