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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복과 정주생활" - 6.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7 조회수39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6.27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창세18,16-33 마태8,18-22

 

 

 

 

 

"반복과 정주생활"

 

 

 

오늘은 ‘반복과 정주생활’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세상 삶에 반복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복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반복을 통해 하느님께 이르고 삶의 깊이에 도달합니다.

반복의 길은 중심의 깊이에 계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반복의 길이 끊어지면 하느님 중심에 이를 길이 없습니다.

하여 혼돈과 방황으로 심신도 점차 무너져 망가져갑니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반복’을 주제로 하여 3가지 명제를 중심으로 강연했다 합니다.

1.반복은 기원이 없다.

2.반복은 의식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3.반복은 시간의 종합이다.

 

 

결국 근원적으로 ‘반복의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즉시 연상된 게 정주생활을 하는 우리 수도승들의 일과표였습니다.

매일, 평생 기도와 노동이 균형 잡힌 일과표에 따라 반복의 삶을 살아가며

내적여정 중에 중심인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의 뿌리를 내리는 우리들입니다.

 

타성적이고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깊이의 주님과 새롭게 만나는 반복입니다.

일과표 궤도의 길에 따라 반복에 충실할 때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와 더불어 항구하고도 활력 넘치는 정주생활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독서의 아브라함은

참으로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한 분들임을 깨닫습니다.

 

집에 정주하여 제자들을 가르친 율법학자들과는 반대로

정처 없는 반복의 유랑 생활 중에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한 예수님이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보이는 장소에 정주한 주님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하느님이 예수님의 진정한 정주처였음을 깨닫습니다.

밤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의 뿌리를 내린 예수님이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다소 충격적이요 과장적입니다만

그토록 주님 제자직의 엄중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일에, 주님 안에 정주하는 일에

올인(all-in)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관계는 얼마나 깊은지요.

예수님처럼 끊임없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의 반복적 유랑생활입니다만

늘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한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도착할 때 마다 주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새롭게 반복의 삶을 시도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 깊은 신뢰의 관계를 능히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의인 50명이라면, 45명이라면, 40명이라면, 30명이라면, 20명이라면,

10명이라면 무려 6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하느님께 묻고

답을 받아내는 아브라함,

진정 수도승들의 모범이자 하느님 안에 깊이 머문

정주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우리가 살 길은 일과표의 반복에 충실하면서

하느님 중심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정주의 길 뿐입니다.

타성적인 반복이 아니라 늘 주님과 새로운 만남의 반복입니다.

 

이런 반복의 길이 주님께 이르는 구원의 길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히 반복되는 미사시간,

주님 안에 깊이 정주의 뿌리를 내리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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