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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8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7 조회수32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3-27

그 무렵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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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과 떠난 뱃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서 주무시고 제자들은 거친 풍랑을 만납니다. 배에 파도가 뒤덮이는 상황에서 주님은 여전히 주무십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주님을 소리치며 깨웁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히 끝을 맺습니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나무라시고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이내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이 기적에 놀라워 합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떠나는 인생의 뱃길에 올라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의 길이라 생각하여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주님이 타시는 배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그 배는 무수한 사람들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호수 위에 출발을 합니다.
 
문득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물살이 배에 넘어듭니다. 

그러나 이 배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 배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파도가 넘어들면서 모두가 물에 젖어 버립니다. 배가 흔들리며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상황과 전혀 관계 없이 주무시는 듯 어떤 도움도 베풀지 않으시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때 우리의 기도는 복음 속의 제자들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읽는 우리에게 복음 속 이야기가 답답한 것은 그 배에 분명 예수님이 타고 계심에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이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그 바람과 호수를 고요하게 할 수 있는 권능의 주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주무신다고 해서 믿음이 약한 제자들의 모습은 나약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의 기도가 우리가 비웃는 제자들을 닮아 있는 것은 우리에겐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까? 주무시는 주님조차 우리에겐 없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주님이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신다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멀리 계신 분인 듯 느껴지고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는 주님께 윽박지르듯 기도하거나 혹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는가 하고 묻곤 합니다. 삶의 매 순간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그분이 우리의 배를 저어 바람이 없는 곳으로 가게 하거나 바람을 없애버리셔야 할 책임이 있는 듯 그분을 찾아나섭니다. 


주님을 찾는 소리가 너무나 절실하게 너무나 커다란 고함소리로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죽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에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분은 모든 능력을 지니셨기에 우리의 커다란 외침이 그분의 잠을 깨울 것이라고, 또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가르치는 기도의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리는 것은, 그리고 죽겠습니다라고 외쳐대는 이들의 소리가 쩌렁 쩌렁 울리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나무라심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 스럽습니다. 


우리의 배는 주님이 먼저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따라 배에 올라탔습니다. 이 배에 올라탄 모든 이들은 공동의 목적을 가졌고, 이 배가 향하는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같은 운명입니다. 그래서 배에 주님이 주무신다면 당연히 그 배의 노와 키는 우리에게 넘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시는 길로 이 배를 몰아야 하고, 풍랑과 파도가 거세어도 이 배를 지키고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임무를 가졌습니다. 

배에 거친 파도가 넘쳐올 때, 주님은 모든 어려움을 단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이 배에서 주무십니다.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배의 목적지까지 우리와 함께 가시지만 아무일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이 배를 지키고, 목적지까지 가야할 우리는 이제 다 죽게 되었다 생각하고 누구도 키도 쥐지 않고 노도 젖지 않으면서 주님을 외쳐 불러댑니다. 살려달라고, 죽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주님따라 배에 탔다가 이렇게 되었노라고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의 목소리에 일어나신 주님은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아무리 주님이 주무신다고 무슨 걱정을 하느냐라는 꾸지람일까요? 주님이 말씀하신 이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람과 호수가 복종하는 분을 믿지 못해서일까요? 


하느님의 배에 올라탄 우리가 가는 호수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호수에서 부는 바람과 그를 통해 일어난 파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배들이 맞딱드려야 하는 상황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주님이 계신 배와 주님이 계시지 않는 배의 차이를 우리는 마치 주님께서 이 배를 아무 사고도 바람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실 것이라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같은 호수에 있으면서 바람이 주님이 계시지 않는 배들에게만 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바람과 파도를 몇 번씩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바람을 맞는다면 우리 역시 맞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배에 주님이 주무신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끌고 가실 것이다라는 것을 믿음이 아니라 어쩌면 주님께서 우리를 믿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손에 더 힘을 주고 키를 잡고, 바람을 이길 수 있도록 정성스레 노를 저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 배에서 주님을 깨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신앙의 훌륭함과 상관 없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라면 사실 배에서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면 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제자들이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배를 뭍으로 붙였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람과 호수의 잠잠함을 두고 주님께 놀라움을 두는 사람들, 그들은 주님께서 잠에서 깨지 않으셨다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배에 올라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힘든데 여전히 주님은 주무시는 듯 보입니다. 


자, 고함을 지르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지켜드리겠습니까? 주님의 배는 가는 곳도 가는 방법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 배가 이 세상에 떠 있다면 당연히 세상의 풍랑은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다고 노젖기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키를 놓지 마십시오. 방향도 잃고 가기를 포기하고 배에서 주님을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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