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실패하니까 사람이다 / 최강 스테파노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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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미숙 | 작성일2011-06-28 | 조회수50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실패하니까 사람이다 머리말 첫사랑! 늙고 병들어서 영혼의 빛깔까지 회색빛으로 바래 가도 잊지 못할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한 번도 서로를 제대로 안아 보지도, 쓰다듬어 보지도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생애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던 때라고 회상하기 때문에 첫사랑입니다. 내가 그를 배신했었는지, 그가 나를 배신했었는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배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는지가 모호한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잘 지내 왔는지, 잘 살아가는지 묻고 싶지만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마는 아픈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첫사랑이라 이름 지어 부르고 과거형 동사를 써 가며 추억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있지만, 오늘도 이렇게 마음 한구석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히 피어오르기 때문에 첫사랑입니다. 이 책의 글들은 제가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파견되어 나간 중국에서 머물 때 썼던 글들입니다. 로마에서 공부를 마치자마자 지친 몸으로 홀로 떠나가 뿌리를 내리고 잘 살아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던 곳, 그곳에서 맞은 첫날 밤부터 그곳을 떠나던 날까지의 기록들입니다. 새벽은 매일 똑같이 밝아 오고 있었지만 저는 지난밤보다 더 어둔 밤을 밝은 태양 아래서조차 보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번도 제대로 안아 보지도, 쓰다듬어 보지도 못하고 떠나온 것이 이토록 안타까운 것을 보면 역시 선교사로서의 저에게 중국은 첫사랑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도착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홀로 쓸쓸히 중국을 떠나오던 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이 비추어 오던, 바로 그 방향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다시는 기억에조차 떠올리지 않겠노라고. 그날 북경의 날씨가 그렇게 추웠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진짜 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가 바로 첫사랑을 등지고 떠나가는 순간이라는 것을 몸뚱이가 본능적으로 알고 그랬는지……. 영광스럽고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 체험들과 쓰디쓴 실패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얼른 그 멍에를 벗어 버리는 일에만 온 신경을 썼다 할지라도, 바로 그런 체험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겁고 힘든 인생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는 다른 동료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니까 사람입니다. 실패하니까 사람입니다. 강론을 준비할 필요도 없이 매일 벽을 보고 앉아서혼자 봉헌하는 미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졌을 때 저는 글을 쓰면서 가까스로 버텨 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고통 안에서 더욱 크고 선명한 희망의 빛으로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글들은 고통 속에서 잉태된 것들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삶의 기쁨과 희망이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어느 글엔가는 사랑이 지겹다고,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참지 못할 만큼 지겹다고 쓰고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은 그만큼 사랑이 우리들 삶의 전부라고 소리치는 역설의 진실이었습니다. 저는 고통 중에 이 글들을 쓰면서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총을 체험할 수 있었고,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뒤에 신앙적으로, 또한 인간적으로 더욱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다른 어떤 행복한 순간에 썼던 글들보다도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러니 부디 이 글들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마시고 자간과 행간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를 들어 가며 읽어 주십시오. 제가 사용한 문자는 오히려 무시하시고 그 글과 글, 행과 행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재주가 없는 저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는 수고 이외에 또 다른 숙제를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고 뒤에라야 주님을 향한 깨달음의 여정에 더욱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니 별 다른 도리가 없군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주님께 더욱 큰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사시기를 멀리서 기도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모든 수고와 배려를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신 가톨릭출판사의 모든 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6월, 멕시코 캄페체에서 최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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