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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쓰자좡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9 조회수574 추천수6 반대(0) 신고

 

 

쓰자좡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제가 살고 있는 집 근처 골목에 시장이 하나 있는데 정말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나 실감할 만큼 오만 가지를 늘어놓고 파는 곳입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잉어와 같은 커다란 민물고기를 산 채로 비늘을 벗겨 파는 어물전, 그 앞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방으로 튀는 엄지 손톱만 한 잉어 비늘을 계급장처럼 머리에 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의 채소를 파는 채소 가게 아저씨는 갈 때마다 웃통을 벗고 있는데 업종과 맞지 않게 배가 남산만 합니다. 산달을 맞은 임산부의 배처럼 커다란 배와 진열된 채소들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반면 돼지고기, 양고기를 파는 푸줏간 청년은 뼈만 앙상한 채 두툼한 비계가 붙은 고기를 연신 ‘스윽슥’ 썰어 내고 있습니다. 몸매를 보면 주인은 아닌 것 같고 그 집에 고용된 일꾼인 듯합니다.

제가 단골로 이용하는 과일 가게는 많은 다른 과일 가게에 비해서 엄청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집 아가씨가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주고객층은 남성들입니다. 그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니까요.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양과자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유혹에 빠집니다. ‘반 근만 살까? 아니야, 그냥 가. 틀림없이 지난번처럼 사다 놓고는 먹지도 않고 버릴 거야.’ 저는 군것질을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양과자를 사다 놓은 것을 잊어버려서 몇 번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 밖에도 국숫집, 아동복 가게, 길거리 물빨래 세탁소, 신발 가게, 휴대폰 가게, 계란 파는 집 등 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바퀴만 돌아 봐도 금세 두세 시간이 홀랑 지나가 버립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시장 구경을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시장 구경에 나설 때마다 온통 신기한 물건들과 그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지금도 시장에 갈 때마다 그때의 설렘과 그때의 재미가 온전히 남아 있어서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싼 물건 사는 일이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재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재미라는 것을 뒤따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 재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값싼 물건을 구입하는 재미를 즐기다 보면 가끔씩 그 값싼 물건의 ‘싼 티’ 때문에 금방 실망을 하거나 황당한 일을 겪게 될 때가 있지요.

지난여름 어김없이 그날에도 시장에 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시장 끝 부분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니 만물상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에서 몇 집은 고장 난 선풍기를 고쳐서 중고로 되팔고 있었습니다.

꽤 괜찮아 보이는 선풍기가 한 대 있어서 값을 물어보니 사십 위안이랍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선풍기는 작고 볼품없는 것도 백몇십 위안씩 하는데 사십 위안이라면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입니다. 마침 선풍기가 필요했던 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얼른 그 선풍기를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작동을 시켜 보니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프로펠러 색깔도 청색이라서 시원한 느낌이 더하다는 장점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펠러의 재질과 두께가 아무래도 좀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 단만 틀어 놓아도 보통 선풍기의 삼 단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선풍기를 산 지 사흘 째 되는 날 밤, 싸고 성능이 좋은 선풍기를 샀다는, 인생의 재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밤에도 방 안 온도가 삼십 도에 다다르다 보니 저같이 더위에 약하면서 잠자는 데에는 한없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밤이 무섭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될 정도입니다. 할 수 없이 침대 옆에 소파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다 선풍기를 틀어 놓으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타이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몇 번을 확인한 다음에야 겨우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 “우당탕”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스탠드 불을 켜 보니 프로펠러가 산산조각이 난 채 선풍기는 방바닥에 처박혀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아닌 밤중의 홍두깨람?’ 한밤중에 방바닥 이곳저곳을 뒹구는 프로펠러 조각을 치우고 있으려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선풍기를 확인해 보니 아직 모터가 작동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프로펠러가 오랜 시간 빠른 속도로 돌다가 점점 헐거워져서 빠져 버린 듯했습니다. 프로펠러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한참 동안 전원 스위치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선풍기의 모터가 신나게 돌아가도 프로펠러가 없으니 조금도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럼 그게 아직도 선풍기일까요? 아니면 선풍기 아닌 다른 무엇일까요?

프로펠러 없는 선풍기! 그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이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기도와 성사 생활입니다. 이것은 선풍기의 핵심 부품인 모터와도 같아서 모터 없이는 선풍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듯이, 기도와 성사 생활을 제외하고는 결코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존재를 논할 수 없습니다. 몇 년 동안 기도와 성사 생활에 참여하지 않는데도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교회 밖의 신자로 만들고 말았을까요?

기도와 성사 생활이 선풍기의 모터에 해당된다면,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은 선풍기의 프로펠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터와 프로펠러가 잘 돌아가야 선풍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듯, 우리의 신앙도 기도와 성사 생활을 바탕으로 한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프로펠러 없는 선풍기 앞에 땀을 뻘뻘 흘리고 앉아서 저는 그날 밤 그런 생각들로 또 하루의 ‘쓰자좡石家庄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제 삶도, 제 신앙도 요즘의 가을바람처럼 사람들을 시원하게 만드는 바람을 내고 싶습니다. 땀 흘리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는 바람나는 인생, 바람나는 신앙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바람나는 인생! 우리의 바람나는 신앙! 어쩌면 이것이 우리 스승 예수님의 마지막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최강신부《실패하니까사람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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