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걸 작품 -반영억신부-(마태오 9,1-8) | |||
---|---|---|---|---|
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6-30 | 조회수593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1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한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시험은 당신 백성을 정화시키고 신앙을 단련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아브라함은 혹독한 수련을 거치며 신앙의 선조로 거듭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어 데리고 온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다. 그분께서는 단순히 육체적 질병뿐 아니라 죄의식으로 짓눌려 있는 마음까지도 낫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온전히 낫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복음). 오늘의 묵상 중풍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질환입니다. 그 결과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발음이 힘들어집니다. 본인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충격으로 한동안은 삶의 많은 부분이 흔들리게 됩니다. 새롭게 인생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지만 저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적자로, 정실부인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혈육이었습니다. 그것도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부인도 포기한 상태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바치라고 하시다니…….
하느님의 걸 작품 -반영억신부- 성지 순례를 하면서 로마, 베니스, 피렌체, 피사, 나폴리, 바티칸의 여러 성당과 광장, 종탑, 문, 세례당 등은 신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명 작가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 졌기에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걸 작품입니다. 걸 작품을 통하여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이 더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성당 유물관도 신앙의 숨결이 살아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보완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성당은 그 안에 주님을 모시고 있느냐와 그 주님을 바라보고 찬미하는 이들에 의해 거룩함이 더 빛나게 됩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멋진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은 목적하는 바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옛 것을 보수하는데 급급해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혼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믿음의 작품들이 오늘도 많이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우리 성당에도 성 김대건 신부상을 복원하여 모실 계획인데 기도 안에서 걸 작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외적인 병을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까지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영육의 치유를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외적인 질병의 치유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근원적인 치유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지니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병의 치유는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는 표징일 따름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에 매달리는 것보다 언제든지 그러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환자 자신이 갖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중풍병자를 평상에 뉘어 주님께 데려온 이웃의 믿음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사실 중풍병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무지와 껍데기 믿음이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 남북 전쟁시에 링컨의 참모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시게 하기위해 기도합시다.”라고 하였을 때 링컨은 “하느님이 우리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편에 서기위하여 기도하도록 합시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합니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믿음의 사람은 생각하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편이 되어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편이 되어주셨고 죄를 용서해 주시며 마음의 자유를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다지고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은 언제나 나에게 잘해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의 우둔한 믿음 탓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믿음에 눈뜨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