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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0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30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1일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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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또한 오늘은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생각하며, 거기에 사제들이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닮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늘을 사제들의 생일이라고도 이야기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은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온 아들은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하느님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하느님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작 그리스도 당신 곁에 있는 이들은 철부지 아이들과 같습니다. 말을 하고 보여주어도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알았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는 그저 그들을 사랑하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는 상태에 아들은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아들은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성심이란 무엇입니까? 사제들이 닮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헤아리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바로 성심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 결국 우리도 그분을 닮아야 할 그 거룩하심의 주제가 '선하신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오해와 편견과 고집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항상 하느님의 구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구원은 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하느님 마음에 들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 늘 의인이 되어야 하며, 반대로 죄인들은 세상에서조차 어둠 속으로 내몰아 버리는 차디찬 사람들의 생각들. 그들의 생각이 쌓이고 쌓여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만들어 내고, 그분을 사랑이라 말하면서도 냉정한 심판관으로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 하느님에 대해 의무만이 남았고, 그분께 구원이란 조상들의 역사에 남겨져 있고, 민족의 자존심으로 역할을 할 뿐 그들은 하느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글로 읽고 감당할 수조차 없는 법을 짊어진 운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은 의인과 죄인이 갈라져 있는, 그것도 거의가 죄인이며 의인이라는 자들은 죄인을 미워하고 비웃는 고집세고 무서운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린 구세주도 로마라는 정복 세력에서 그 민족을 다시 구해줄 힘있는 분이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 말씀은 율법의 내용이고, 모든 예언의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 곁에는 의인이 아닌 죄인이 있었고, 심판이 아닌 죄인이 구원되는 장면만이 연출됩니다. 

하느님을 잘 안다는 이들은 하느님을 배경삼아 자신의 영리를 챙기고, 하느님을 가르친다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사람들을 죄다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마저 실천하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사람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눈 앞의 참 의인을 죽음에 내몰며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은 먼 역사 속의 구원을 듣고 율법이란 굴레에 죄인으로 살아온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살아있는 구원이, 사랑이 전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요, 가족이셨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사시며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아버지를 모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아들이 알고 있는 아버지와 너무나 다릅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증언은 어느새 독백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사랑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이야기는 이제 이 아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보게 될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며 뜻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함께 하시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하느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잘 해봐야 죄인을 면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 하느님의 진리는 너무나 어려워 도저히 배워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율법학자들이 파 놓은 울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제단에 예물을 잘 바치는 것이 그저 도리인 줄로 알았던 사람들. 그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나 한테 잘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 함께 살아가시는 모든 것에서 보고 배워 그분처럼 살라는 이야기이십니다. 

그러면 '안식' 곧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 천국의 이치를 알게 되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여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며 그를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은 책 속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와서 그 아버지의 사랑하는 이들 곁에 함께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 성심은 그 아버지 하느님의 성심을 닮은 그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성심은 우리를 가리지 않고 감싸고 돕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사제들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거룩함이 오늘 철부지와 같은 사랑스런 이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뜻을 알아듣고 그들에게 생명을 다하는 아들의 마음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비교하고 비판하는 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심은 비교의 대상이나 비판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성심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여 예수 성심을 본받아야 하는 이들이 이 복음을 대한다면,
내 말을 알아듣는지도 모르는 철부지들을 끌어안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행복해하는 아들처럼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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