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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 간다! 푸르른 내 청춘/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1 조회수709 추천수11 반대(0) 신고

 

 

안 간다! 푸르른 내 청춘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제가 이십대 초반 때였던가? 어느 가수가 통기타를 치며 이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불러서 가는 세월을 아쉬워했었습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밤, 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벌써 몇 번째 그 노래가 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그 시간, 허베이 사범 대학 캠퍼스 저편 어딘가에서 벌써 몇 시간째 시끌벅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 학교에 무슨 큰 행사가 있는가 봅니다.

주말 저녁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TV를 보면서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은 생각에 어느새 제 발걸음은 노랫소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으면 이렇게 밤에도 옷을 다시 챙겨 입고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 앞 광장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우산들 사이를 비집고 무대 근처로 가까이 가서 보니 십수 명의 참가자들이 벌이는, 캠퍼스 노래자랑 같은 성격의 행사였습니다. 잘생긴 남학생이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면 주로 뚱뚱한 여학생들이 꽃다발을 안겨 주면서 은근슬쩍 포옹을 하고, 예쁜 여학생이 올라와 노래를 부르면 주로 뱅뱅 도는 고시생 안경을 낀 더벅머리 남학생들이 수줍게 꽃다발을 전해 주고는 도망치듯 무대를 내려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청중들은 우산을 높이 쳐들고 환호했습니다. 약간은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무대와 학생들의 모습이 마치 이십 년 전 저의 대학생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연출된 느낌이었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돈도 없고 놀잇거리도 많지 않은 대학생들에게는 이런 축제가 더없이 신나는 것이지요.

‘젊음, 푸릇푸릇 생기가 넘쳐 나는 젊음이로구나! 남학생들이 여학생 가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는 것이, 여학생들이 남학생 가수를 향해 우산을 돌려 가며 환호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조물주의 섭리이거늘, 누군들 이를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저들 만한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들보다 더 열광하며 소리를 지를 텐데. 나는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 있구나. 이십 년 전에 나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노래자랑이 끝나고 한참을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난 대학 시절을 잠깐 더듬어 보았습니다. 갑자기 짙은 최루탄 냄새가 머릿속을 채우고, 광주, 군부 독재, 민주화, 데모, 화염병, 백골단, 수업 거부 등이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슬펐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청춘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단어들로 기억된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질진대 하물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광주의 청춘들의 넋에 대해서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물론 사랑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주로 제 쪽에서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감정, 누군가 몹시 그립다는 느낌 자체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워하던 대상이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으면 저는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줄곧 그런 식이었습니다. ‘왜 저는 상대와 함께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던 걸까요?’

 지난 청춘에 대한 이런저런 회상에 젖어 밤늦도록 캠퍼스를 배회하다가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 인생의 청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그리고 그 청춘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

생물학적으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절정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절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이십 년, 아니면 이십오 년 전에 지나가 버린 과거의 청춘은 제 기억으로만 남아 있기에 일점일획도 우리의 의지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 과거의 시간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우리의 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금과 여기’에 우뚝 서 있는 ‘나’는 언제나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쉰이라도, 육십이라도, 칠십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작은 희생과 봉사를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만 있다면 그는 인생의 청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을 마칠 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청춘을 살다 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에 등장했던 이십대 초반의 깜찍한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도 기억하지만,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유니세프UNICEF 친선 대사로서 아프리카의 기아 어린이들과 함께 서 있는 노년의 오드리가 더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젊은 영화배우로서의 오드리의 삶도 성공적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로 보냈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이 그녀 인생의 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우리 삶의 최고 절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최고의 시간, 최고의 청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시간을 거룩하게 보내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이 슬퍼할 테니까요.

 

사무엘 울만Samuel Ulman의 이라는 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란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으로 기력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은 먼지가 되어 버린다.

 

육십 세든 십육 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무선 기지국’을 통해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이십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팔십 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최강신부《실패하니까 사람이다》중에서

 http://www.facebook.com/catholicbuk

 by 가톨릭출판사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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