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떻게 살겠니?(롯과 두 딸이야기)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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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7-02 | 조회수49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롯은 초아르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서 자기의 두 딸과 함게 살았다. 초아르에 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롯은 자기의 두 달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그 때 맏딸이 작은딸에게 말하였다.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습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구나."(창세 19,31)
롯이 앞에서는 두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곳(창세 19,20)으로 달아나게 해 달라고 해서 그리로 달아났는데 지금은 천사가 알려준 그 "산"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가요?
보통 성경에서의 "산"의 표현은 하느님이 계신곳을 의미합니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 보아집니다. 그런데 그 심경의 변화가 주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변화가 생겼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성경이 말하는 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초아르에 사는 것이 두려워서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어쨌거나 산으로 가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겠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산에 와서 그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말합니다. 초아르에서 느꼈던 두려움을 그대로 안고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롯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왔다면 그는 굴속에서 살지 않고 자유 안에서 빛 가운데서 살았을 것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이 빛 가운데 살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희망이라고는 없습니다. 희망을 품었다 하더라도
엇나간 희망을 꿈꾸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속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구나."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아버지가 늙어서? 아직 이사악이 태어나지 않아서 하느님의 능력을 보지 못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늙은 아버지께 희망을 잃었다함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음이며 이 세상의 풍속대로 자신들에게 올 남자가 없다고 결론 지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다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줄곧 외쳐대자 하느님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은 칠천명을 모두 남겨 두겠다."(1열왕19,18)
물론 세상의 풍습은 알거지가 된 자신들을 반기지 않습니다. 보기는 잘 보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 산으로 오지 않고 세상이 두려워 위안을 얻기 위해 산으로 온 그들의 삶의 모습은 결국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계획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주님께 묻지 않고 자신들의 인생 목표를
자신이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올바르지 못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 내용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신앙을 갖고자 한 동기를 돌아보고 롯처럼 세상에 사는 두려움 때문에
피하고자 신앙을 가졌나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통 어떻게 성당에 오게 되었냐고 물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왔다고
많이 대답하신답니다. 좋습니다. 어떠한 동기 유발로 오셨든지 이미 오셨으니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고
살면 됩니다.
가장 빠른 지름길이 있습니다.
남의 묵상을 많이 읽는 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름길은 자신이 직접 묵상하는 것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느님 체험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한가지가 묵상을 어려워 하시기 때문입니다.
묵상의 첫단계로 저의 체험을 소개해 드리면 성경을 읽으시면서 저는 꼭 질문을 드립니다. 어떤 질문은 알아 듣는데 시일이 걸리기도 하지만 꼭 답을 주시는데 내가 질문했기에 들리는 그 답이 참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느껴지며 그렇게 얻은 답은 내 마음에서 살아 있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말을 건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자유기도로 소리내어 하시면 참 좋습니다.
타인의 묵상글을 읽을 때는 그 자리에서는 공감대는 형성되지만 내 삶안에서, 내 마음에서,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타인의 묵상 글이 아니라 내가 묵상하고 체험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묵상하고 체험한 말씀을 힘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피해, 세상에서 희망을 얻을 수 없어서 이 산(교회)에 모여왔다 하더라도 이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기도), 듣고, 살아내려 애써야 합니다. 이것이 저는 주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롯과 그의 두 딸이 선택한 삶을 살 것인가?
이제 결단할 차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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