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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02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2 조회수30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7월 2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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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



어릴 때 예수님은 잘못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라는 말에 오늘 복음을 가지고 언쟁을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십계명에 있는데, 예수님은 부모님께 대들었으니 잘못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리곤 별 결론을 낼 수 없어 '이거 하나만 빼고'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열두 살.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지 못하는 나이입니다. 열두 살의 아이에게 부모들은 공부는 잘하기를 원하지만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그 아이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생각에 대해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직 생각이나 판단이 확실히 서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찾아보기 힘든 예수님의 유년기 시절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 복음의 내용을 우리는 그저 '예수님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라는 말로 넘겨야 할까요? 가족들이 떠나는 길에도 성전에 앉아 성전 학자들과 율법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 그분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는 부모에게 이렇게 대꾸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는 아이, 그리고 그곳에서 그 성전의 주인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 그냥 호기심이 많다고 말하기에 그 호기심의 주제가 하느님이고 그 이야기가 일방적인 질문이나 학습이 아니라 문답이었다면 이것은 지금 시대의 열두 살의 아이의 행동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린 예수님의 실종사건은 이 대답과 함께 이내 고향으로 내려가심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성모님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요? 


어린 예수님은 분명 열두 살의 보통 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머물렀던 성전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 맞습니다. 
사실 이 복음의 해석은 천사의 예언으로 들었던 일들이 실현되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는 확인하고 가슴에 새겼다는 이야기로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릴 때 부터 아버지의 집을 알고 계셨고 당신이 세상에 선포해야 할 아버지의 뜻을 새기고 다지는 과정을 거치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그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열두 살의 아이가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불렀다는 점은 비단 예수님만의 특별함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 속을 함께 걸으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살의 초상에서 우리 아이들의 열두 살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열두 살 아이는 어떤 존재들입니까? 우리는 열두 살의 아이들이 총명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총명함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나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정의는 100점짜리 문제지 속에 있고 현실에는 필요 없습니다. 부모가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들에게 도덕은 책에서는 예의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잘 외워서 남 앞에 서는 도구가 되는 것이 고작입니다.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를 지시하고 명령하면 그 말에 복종하는 것이 열두 살 아이들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성당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냥 그래야 하느님이 모든 일에 잘 도와주신다는 설명 밖에 없는 열두 살 아이의 신앙터전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습니다. 그런 눈으로 아이들을 성당에 잘 나오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자니 그들이 좋아하는 과자, 음식, 선물로만 우리의 생각은 몰립니다.  


세상은 열두 살 아이들에게 더 어려운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루라도 더 수준을 높이기를 강조하는데 반해, 교회는 좀 더 쉽게 좀 더 쉽게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마치 우리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진리가 고학력 고수준이 되어야만 이해가 가능한 것 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방법은 마치 의사소통마저 안되는 아이들 처럼 대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지적에는 현실의 아이들을 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말 성전에 대해 가르쳐본걸까요? 정말 하느님에 대해 가르쳐는 본 걸까요? 아니 하느님에 대해 그들의 생각할 수 있다는 인정을 해 본 적이 있을까요? 그들과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을까요? 


열두 살 아이에게 신앙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혹시나 그것을 예수님과 우리 아이들의 차이로 설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걱정스럽습니다. 



열두 살의 예수님이 벌이신 이 사건은 열두 살의 예수님이 그저 따라다니는 신앙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성전을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지하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의 생각마저 있음을 드러내줍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데 열두 살은 충분히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고 활동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교회도 현실에서 아이들의 수준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부분을 전통에서는 지켜오고 있습니다. 성당에 선물이나 과자로 유혹하는 수준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 보아도 맛보아도 밀떡인 것을 두고 예수님의 몸이 맞느냐고 물어봅니다. 보이는 것을 넘어 있는 가치를 인정해야 영성체가 된다는 것, 그래서 유아세례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 일치한 후 부터 이 아이는 스스로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전통으로는 지켜오면서도 첫영성체가 끝나고 나면 이내 이전처럼 아이들을 대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을 진심으로 묵상한다면 우리는 아이들 안에서 형성되는 하느님에 대한 인지와 신앙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보다 발전하기를 원하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이런 무능한 상태로 파악하고 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아이들을 처음부터 하느님의 자녀로 믿지 않은, 그리고 심지어 하느님 앞에서 본인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성모님이 이 모든 일을 가슴에 새겼다는 말씀에서 성모님이 아들을 보시는 눈이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가족들을 따라 갔던 예수님이 고향에 내려가 이제는 당신의 의지로 부모의 말을 받아들이고 따랐음을 '순명'이라는 단어가 설명해주듯 성모님은 천사의 예언이 아들에게서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열두 살의 예수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열두 살, 이 천사들이 더욱 일찍 하느님을 알 때 우리의 세상은 천국에 더 가깝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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