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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영억라파엘신부-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마태오 10,17-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3 조회수39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 7 3일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

(마태오 10,17-22)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원래 양반 가문이었는데, 그의 아버지 김제준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세례를 받고 1836년 열여섯 살에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사제가 되고자 마카오로 떠난다. 김대건 신부는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선교사 신부의 입국을 도우러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시의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해 8월 익산 나바위 근처 바닷가로 입국한 김대건 신부는 병오 박해 이듬해인 1846년 연평도 부근으로 입국하는 선교사를 기다리다가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 스물여섯의 나이로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시어, 순교로 한국 교회의 기초를 놓아 주시고 모든 성직자의 수호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신앙과 열정을 본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요아스는 일곱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린 사람이다. 그가 통치 말년에 하느님을 저버리고 계명을 거스르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경고를 전한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요아스 임금은 즈카르야를 처형한다(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믿음으로 참여하며, 이 희망으로 온갖 환난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불의가 만연해도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마침내 승리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장차 겪게 될 박해와 고난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믿고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임을 약속하신다(복음).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이 두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 한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7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어떤 신자분이 성경을 읽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너무 기가 막혀 삼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 복음 13장 2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우리 신자분들 중에는 오늘의 운세를 보듯, 점을 치듯 성경을 읽는 분이 계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되는대로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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