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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0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5 조회수29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5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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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분주한 일상이 펼쳐지는 복음입니다. 주님의 그 일상은 그야말로 쉴틈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예수님을 기적들이 펼쳐지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 이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대단하신 무용담을 떠올리게 되지만 복음 속의 내용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내용들을 아주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은 그 내용 중에 분명 포함되어 있으나 그것만이 목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기적은 목적이 아닌 증거로서 우리 앞에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일상은 예수님의 모든 일이 주님이 먼저 다가가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후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와 있음을 선포하시고, 그 증거가 되는 모든 죄인과 병자들이 구원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순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 곧잘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꼽지만 실제 예수님의 행동은 그분이 온 고을과 마을 당신 백성을 찾으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지켜보신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하고', '믿어야만 하는' 말로써 전해지고, 순명이나 순종이라는 의무로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바로 이 세상이 그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이런 중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한다는 사랑의 증거이지, 그것이 그분이 우리 마음을 돌려세우시는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 같이 당신 앞에 놓여진 한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어서 오히려 우리의 감동과 감탄과 찬미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도 보상도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기적을 어떤 식으로든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문제가 됩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이 엇갈린 반응은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에 놀란 것으로, 또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찬사로 보이는 첫번째 반응 역시 예수님이 하신 기적에 대한 올바른 시선이라고 보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며 하느님께 향한 감탄어린 시선은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한 감탄일 수 있으나 하느님의 마음이나 사랑을 헤아리고 배우고 받아들이는 마음과는 분명 다릅니다. 사실 복음 첫머리에 나오는 기적에서 가장 중요한 이는 마귀들려 말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 뒤로 그분의 능력에만 정신을 쏟고 그 아픈 이를 보시던 주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선 고을에서 구원이나 용서라는 말에 세상에서 이미 배제된 인생들을 만나십니다. 온통 죄인들이요 사는 것이 죄만 늘어갈 뿐인 사람들, 하느님의 구원은 들었으나 느껴보지 못한, 하느님의 사랑은 들었으나 무서운 하느님의 벌만을 기다려야 하는 인생들을 그분 스스로 다니며 만나셨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라 불리는 것은 주님의 이러한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이 일들은 불가능한 것이 극복되었다는 기쁨 보다는 사람을 속절없이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장애들을 걷어내어 주신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분명히 하느님이 주신 성한 한 인간을 세상으로 다시 끌어내어 주신 것 뿐입니다. 마귀들려 말을 못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된 것 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사랑이었고, 그래서 이 기적들은 드러난 놀라움 보다는 그 사랑을 받은 이가 보통의 평범한 인생을 다시 회복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상은 환영만 받는 삶이 아니었음을 복음은 첫머리부터 보여줍니다. 그래서 뒤로 흐르는 예수님의 바쁜 걸음과 일상이 성공하는 인생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의심당하고 욕먹고,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의 능력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하느님을 느껴보지 못한 측은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느님을 왜곡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의심을 당하시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분의 백성들의 지도자가 의심하고 외면하는 하느님의 진리, 그러나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러한 걸림돌과 방해에도 아랑곳 없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 길을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답답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간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의 사랑이 그리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고단한 일상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일꾼이 되십시오. 
그분처럼 먼저 다가가고 가르치고 실천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사랑의 일꾼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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