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파견된 삶" - 7.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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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7-06 | 조회수431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1.7.6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창세41,55-57;42,5-7ㄴ.17-24ㄱ 마태10,1-7
"파견된 삶"
오늘은 ‘열정과 순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이 있을 때 순수한 마음이요 순수한 마음에서 샘솟는 열정입니다. 수도승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덕목인 열정과 순수는 함께 갑니다. 때로 대선후보로 거론 되었던 두 민주 인사의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자유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 싶다’에 대한 김근태 씨의 답변입니다. “우리 세대에 자유라 함은 타는 목마름 내지 그리움이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자유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재케 하는 그 어떤 의미였다. 자유가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자유대신 ‘하느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하느님은 자유자체입니다. 우리 수도승들에게 하느님의 추구는 바로 자유의 추구와 직결됩니다. 살기위하여 생명과 같은 자유를 위해 하느님을 찾는 우리들입니다. 다음은 유시민 씨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입니다. “상황이 굉장히, 상당히 어렵다.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만해도 위축돼 있다. 좀 겁이 난다, 겁이 많아졌다. 우리 안의 낭만주의가 다 없어진 것 같다. 낭만주의는 질풍노도 즉, 열정을 의미한다. 나를 포함해 그 어떤 현실정치인에게도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이 열정과 낭만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자유와 더불어 열정과 낭만의 회복입니다. 열정과 낭만이 사라져가는 각박한 현실에 가중되는 두려움입니다. 김근태 씨의 낭만에 대한 기사도 음미할 만합니다. “낭만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요소다. 마치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기계가 뻑뻑하게 돌아가다가 결국 멈추게 된다. 낭만은 한 개인과 사회를 부드럽게 돌아가게 해 주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진정 하느님을 찾을 때 열정과 순수, 낭만의 사람입니다. 두려움도 점차 사라져 자유로운 삶입니다. 열정과 순수, 낭만이 사라진 삶은 죽어있으나 실상은 죽은 삶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강론에도 수차례 인용했던 다음 말입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
70에 죽어 70에 묻히는 삶이어야 하는데, 30이후에 이미 열정과 순수, 낭만의 상실로 땅에 묻히지는 않았어도 실상 살아있으나 죽은 삶을 의미합니다. 구도자들이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입니다.
이 두 분들의 답은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자신도 실종입니다. 주님께 불림 받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다음 서두 말씀을 통해 사도들은 물론 우리의 신원이 환히 계시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주님이 바로 사도들 삶의 뿌리이듯이 우리 삶의 뿌리입니다. 이 주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아 사도들처럼 삶의 현장으로 파견되어 복음 선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이렇게 선포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비전이자 목표인 ‘하늘나라’는 수도승은 물론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비전이자 목표입니다. 우리 삶의 뿌리인 주님을, 비전이자 목표인 하늘나라를 잊을 때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열정과 순수, 낭만의 상실입니다. 서서히 두려움의 어둠에 휩싸입니다.
예수님께 파견되는 제자들처럼, 하느님께로부터 이집트에 파견되어 결국은 이집트인들은 물론 자기 형들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하는 요셉입니다. 하느님의 심오하고 원대한 계획이 놀랍습니다.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로 이집트의 이 인자가 된 요셉에 대한 파라오의 신뢰가 참으로 절대적입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다음 요셉의 고백에서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액세서리도 장식품도 아닌 우리의 생명입니다. 사도들처럼, 요셉처럼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삶, 이게 바로 우리의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이런 신원의식에 투철할 때 열정과 순수, 지혜와 낭만의 삶입니다.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열정과 순수를 새롭게 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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