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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봉사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사랑의 능력 / 수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6 조회수414 추천수6 반대(0) 신고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 <마태오복음서 10, 8 - 9  /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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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로부터 파견되어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받은게 많을 것이며, 어떤 이들은 받은게 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라고는 자기에게 티끌만큼도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까운 주위로부터 인격적 무시를 당하고 인간적 비웃음을 사면서도 그저 자신의 삶에 신앙의 의미를 두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신앙을 지니고 나서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 보면 지난 날들이 수많은 죄뿐이었다는 것을 이들은 솔직하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루카복음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예수님께로부터 '주님의 능력'을 받은 것이라고는 없지만, 혹여나 만일 받은게 있다면 자신이 그동안 살아 온 지난 나날들의 지은 죄에 대한 주님의 용서 밖에 없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 내린 눈물은 저 죄많은 여인네처럼 자신에게 다가오신 주님의 발을 흠뿍 적시고 주님으로부터 큰 평화를 얻게 된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누구라도 이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면 이것이 가장 커다란 주님의 능력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렇게 만족해 하지 못합니다. 거대한 능력을 바라보는게 더 실질적이라고 확신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서 죄의 용서를 많이 받았다면 주님의 놀라운 능력들을 대중들 앞에서 크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남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더라도 주변으로부터 비웃음 따위는 없어졌을 테니깐 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많이 받았으면 자신도 남의 죄들에 대하여 많이 용서를 해야 하는데 제 자신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거저 받았으면 거저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자신이 용서를 받은 것인지 조차 잊고 사는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남을 생각해서 남들을 섬기며 사는게 마치 '죄의 벌'과 같이 느끼도록 만들어 지는게 이 세상의 일입니다. 옛날에는 몹쓸 병이란 자기 죄 때문이라고 여겼고 지금의 세상에서도 완전히 그런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남을 위한 섬김의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는 단지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흔히 남을 위해서 생활하는 행동을 가리켜 '봉사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삶은 누구에게는 해당되지만 자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고 그렇게 여기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은 죄값을 받을 몫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도 받은게 없지만 특별히 용서받을 죄값도 그리 많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중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주님만을 사랑하려고 가장 보잘것 없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께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봉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과를 바라보고 기대를 걸며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일지라도 봉사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입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결과에 매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거저 받았으니 주님의 사랑을 거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 자체입니다. 그래서 봉사의 결과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봉사하고자 하는 사랑의 그 과정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과를 기대한다면 세상의 일에서는 실망과 낙담이 더 크게 보여지고 그리하여 끝내는 '그만 두자' 하는 포기하려는 심정이 커져갑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봉사는 결과를 보고 하는게 아니라 결과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순간 과정들의 연속선 상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과 같이 아무것도 걸치지도 않고 아무것도 만지거나 아무것도 지니지도 않으며 다만 주님의 은총만을 의탁하며 날마다 주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 기도드리는 일상의 자세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 (오웅진 신부님)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과에 마음을 두지않고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과정들을 결과 보다 더욱 중요시하여야 하는데 언제나 마음에 새겨두어야 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일어나는 과정들, 과정들에서 '사랑으로' 오로지 실천해 가는게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의 대단한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사랑 그 자체'는 정말로 말하지만 주님의 가장 큰 능력인 것입니다.
 
가장 큰 하느님의 기적은 '사랑의 기적'입니다. 사랑이 모든 과정들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아니 그렇게 지단하게 노력한다면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사랑의 나라 안에는 사랑 자체이신 분, 주 예수님께서 함께 그들과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사람사는 '하늘 나라'입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이들이 보잘것 없는 봉사의 손과 발을 통해 "하느님과 같이 우러름을 받는" 평화의 나라이다 할 것입니다.
 
정치사회적 대중들을 의식하지 않고, 결과를 의식하지 않으며 고독하게 홀로 주님 안에서 주님께 의탁하며 가장 보잘것 없는 이들(길 잃은 양들) 안에 분명하게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못난 그들(참 거지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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