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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0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6 조회수32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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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복음 말씀을 읽을 때 하루에 주어지는 말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미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날에 주어지는 말씀만 듣게 될 뿐입니다. 물론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날들은 이어지는 복음을 앞 뒤로 바라보고 이해할 때 한층 더 그 말씀의 뜻이 깊이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정하시고 그들을 보내시며 하신 말씀들이 이어집니다. 복음의 첫머리는 그 말씀을 요약한 듯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명들은 가는 곳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고 증거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함과 더불어 하느님의 진심을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 앞에는 예수님이 이 사도들을 왜 뽑으셨는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사도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금지를 말씀하시기 전에 가야 할 곳 까지 정해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주신 능력을 지니고 다른 민족들이나 사마리아 지방이 아닌 이스라엘로만 향하도록 지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집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하신 이 말씀들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 말씀만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순수함을 지니고 세속의 어떤 방법이 아닌 오직 주님께 받은 말씀과 행동으로만 복음을 선포하라고 알아듣습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으로 이스라엘 자신들의 동네에 보내진 사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이러한 복음 선포의 의무는 사실 그 스승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고을과 마을에 다니시며 사도들이 해야 했던 일을 스승은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그 스승이 사도들을 뽑아 세우신 이유는 그렇게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느님을 바로 알지 못했고, 모두가 하느님의 앞에 두려움과 죄인으로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의인이 있다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간 곳 없이 죄인으로 내 몰린 이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목자 잃은 양들과 같이 그들을 보셨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온 세상이 알아듣는 거창한 목적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시고 그 일꾼들로 사도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로 정해졌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능력들로 사도들에게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에게 내려진 일들은 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어 특별한 사람으로 뽑아세우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랑에 의해 선택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점을 분명히 알려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사도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조건으로 하느님이 세우신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받은 것에 자신의 색을 덧칠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도 예수님을 만나고 함께 하면서 같은 사랑을 받았던 증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을 위한 조건들을 갖추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사도들에게서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것이 사도들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것은 솜씨 좋은 스승이나, 돈 많고 재능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이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첫 출발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을 멋지게 포장된 형태로 전하게 된다면, 또한 혹여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사람이 하느님의 비밀을 혼자 쥐고 있는냥 사람들 앞에 선다면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어야 하는 사도들의 처지를 만드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예수님의 이같은 사명은 여전히 살아있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그 조차도 주님의 마음을 헤아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이에게 '극기'와 '겸손'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큼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하기 전에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한 사람임을 스스로는 알 것입니다. 


혹시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그렇게 절실합니다. 우리가 특별해서 그분이 선택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우리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라고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 뿐입니다. 능력도 그분의 것이고 사랑도 그분이 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일을 하며 그분을 이해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있게 우리는 직무로는 하느님이 쓰시는 소모품이라는 것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그분의 사랑을 아는 사람임을 증언하고 그 증언을 듣는 이들과 함께 하느님 사랑을 실천해야 할 똑같은 처지임을 스스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이의 평화의 인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듣고 듣는 이가 고개를 숙여 감사해야 하는 평화의 인사가 평화일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에게 내려진 명령 안에 담겨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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