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은 좋은 결실을 희망하며, 수고의 땀을 흘립니다. 보통 씨 뿌리는 사람은 땅을 정성스럽게 일군 다음 씨를 뿌립니다. 농사를 지으셨던 저의 아버지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타난 ‘씨 뿌리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은 씨의 양을 얼마나 심었는지, 그것이 어디에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에서는 농사짓는 자로서의 노력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또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어야 하는지도 다루지 않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뿌린 씨가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라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관심이 ‘씨 뿌리는 사람’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땅’으로 전환되면서, 오늘 복음의 핵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신 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 그 말씀이 자신 안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좋은 마음의 밭’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마음의 밭을 간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기 이전에 악한 자가 쪼아 먹는 것,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환난과 박해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숨을 막아버리는 것 등 밭의 문제가 아닌 외적 방해 요소가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방해 요소들은 하느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악의 요소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마음의 밭에서 하느님 말씀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려면, 우선 그 외적 방해 요소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거나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악의 작용을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악의 세력과 악마가 저지른 잘못과 죄악은 하느님의 선성(善性)을 이길 수 없고, 예수님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성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선성에 참여하여, 그 풍성한 결실을 얻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잠시 있더라도 희망을 품고 좋은 마음의 밭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하느님의 선성이 승리하리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악의 요소(악마)와 대적하는 기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성을 좀먹게 하며 유혹하는 악마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악마는 나의 약점이나 상처, 심지어 나의 장점(교만)을 아주 교묘하고 치사하게 이용하여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1 베드 5,8-9 참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악의 요소를 인식하고 찾아내는 것, 나 자신과 그놈들의 역할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의 밭을 방해하는 악마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악마는 이미 힘을 잃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야, 이 도둑놈아!’라는 소리를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지듯이 말입니다. 말씀의 결실을 방해하는 악의 요소를 과감히 내쫓거나 물리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않으며 살아간다면,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풍성한 결실을 얻을 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저희 집안의 가정 성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약한 누이들의 건강 문제, 어머니 모시는 문제, 농사짓는 문제, 식구들끼리의 갈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갈등의 내부에는 또 다른 세력이 있었습니다. 유전적인 약함, 경제적 어려움, 마음의 상처와 고통, 가족 간에 드러내기 싫은 자존심의 문제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요소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을 단정 짓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며 악의 요소를 물리치려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난주 가족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서로 요일을 정하여 묵주기도와 매일 미사 참례를 하는 ‘고리기도’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가정의 성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집안에도 성령의 결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의 요소와 세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하느님 말씀이 풍성한 결실을 얻는 좋은 마음의 밭을 일구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