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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바라보면......[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8 조회수336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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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봄은 여자의 계절입니까? 남자의 계절입니까?

요즘 자매님들 몸이 들썩들썩할 겁니다.

산만 쳐다보아도 흥분이 되고, 너무도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편안하셨습니까?


우리 신자들에게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믿습니까?

돈을 믿습니까?

더 크게 대답하고 싶어도 양심상 하지 못하는 거지요.

오늘 여러분이 보는 복음에 믿는다! 는 말이 다섯 번 나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하고 고백합니다.

입술로만 믿는 게 하니라 나의 고백내용을 믿고

그 믿음이 뿌리가 내려야 내거지~~

입으로만 하느님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무엇을 믿어야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몰라서 못 믿는 겁니다.


첫 번째 하느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이 창조주시라는 것을 믿나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따라서 우리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성서에 보면 인간을 무엇으로 빚어 만드셨나요?

네, 진흙인간을 만들어 놓으시고 무엇을 불어 넣습니까?
상상해보면 진흙으로 사람을 예쁘게 빚으시고 숨을 불어 넣으실 때

하느님 콧김이 얼마나 센지 몰라도~~

뻣뻣하게 서서 “흥~~흥~~”  이렇게 불어 넣으셨을까요?

생각컨대 인형 앞에 무릎을 꿇고 뺨을 갖다 대고

코에다가 후~~~하고 숨을 불어 넣으셨을 겁니다.


인간은 어쩌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발에 밟히는 개미나 바퀴벌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두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모든 정성을 다하여 만드신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첫 번째 내용은

나 같은 죄인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 부모님의 몸을 빌려서

창조주인 하느님이 무릎을 꿇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이 창조주가 무릎을 꿇고 만들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거울입니다.

옛날 교리문답에 ‘인간이 왜 사느뇨?’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를 구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쩌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믿습니다! 

주님이신 창조주께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보잘 것 없는 나를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만들어주셨다는 여기로부터 모든 감사는 시작되어야 하며

여기가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두 번 째 믿음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으며

하느님의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자식을 용서하면서도 조건을 붙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 조건을 붙입니다.

“내가 이번에는 용서하지만 다음에 또 이러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몸으로 막고 구해 주시면서

조건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야, 내년 이맘때에 내가 왔을 때 이렇게 야한 옷 입고 또 사람 꼬시면  내 가만 안 둘겨!”


인간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붙습니다.

내가 사랑한 것만큼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지만 그게 돌아옵디까?

늘 나의 기대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기대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해 주면~~ 이만큼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상처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하느님처럼 인간도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디를 나갔다 오니 소방차가 동네에 와 있는데 가만히 보니 집에 불이 난거야~~

불 속에 아이들이 있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말려도 뿌리치고 불속으로 뛰어듭니다.

‘지금 내가 이 불 속에 들어가면 몇 도의 화상을 입을 것이다!’

그런 생각 안 하죠~~

무조건 새끼 살리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옛날에 기찻길 옆에 판자촌도 많았고 애들도 많았지요.

엄마가 한참 빨래를 하다 보니 옆에 놀고 있던 아이가 없는 거야~~

아이가 기찻길에서 노는데 기차소리가 들리면~~

그 때 엄마는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가며

 ‘기차가 지나가면 내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 안 하지요.

이 두 가지의 예는 자기 새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것이 가능할까요?

제가 교도소 신부할 때 외아들이 칼에 맞아 죽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비가 붙어, 난자를 당하다 시피 했고 살인범은 붙잡혔습니다.

그 때 18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약 6개월 후 죽은 외아들의 어머니가

신부님, 부탁이 있는 데 내 아들 죽인 아이 수양아들 삼게 다리 좀 놓아주십시오,“

하기에 저는 기절할 뻔 했습니다.

“자매님, 무슨 말씀이냐~~외아들을 수십 군데를 찔러 죽인 사람을 만나다니요!”


그래서 그 청년에게 말했더니

“그 여자 미친것 아니냐~~ 내가 지 아들을 난자해 죽였는데~~”

그 자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놈 머리 다 뜯을 줄 알았지요.

그 살인범은 고개 숙이고 있는데....

 그 자매가 손을 내밀어 달달 떨고 있는 살인범의 손을 잡으며

“이 사람아, 자네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야!”

그 살인범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저도 같이 따라 울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날 이후 얼마나 정성껏 아들 옥바라지를 하는지~·

영치금 넣어주고.... 겨울이면 양말, 목도리 손수 떠서 갖다 주고~~

이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그 히스토리를 듣지 않고는 남이 보면 정말 엄마와 아들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모범수로 12년 만에 출옥하여 청주에서는 살기 어려워 다른 곳으로 멀리

이사 가서 모자가 수퍼마켓을 하며 얼마나 성실하게 잘 사는지 모릅니다.


자기 새끼 불 속에 있는 것 구하려고 뛰어 들어가는 것

자기 새끼 기차에 치이는 것 구하려고 뛰어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내 자식 무참히 죽인 그 웬수를 자식으로 삼아 사랑하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신앙과 믿음이 있다면~~

우리 인간도 하느님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다!!!


믿음의 세 번 째 내용은 무엇일까요?

창조주가 늘 우리를 돌보고 지켜주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들은 약하기에 늘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병, 외로움, 죽음, 미래에 대한....,

죄를 짓고 나면 죄의식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가 어떤 처지에 빠졌다하더라도 우리에게서 얼굴 싹 돌리지 않고

늘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들은 나에게 칼을 들이대고, 비수를 꽂은 적이 수없이 있다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삿대질하고 온갖 욕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신앙은 보는 겁니다.

하느님을 쳐다보는 것~~

하느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 신앙입니다.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 구리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 본 사람은

치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을 쳐다보는 사람은~~

예수님을 쳐다보는 사람은 치유를 받습니다.


신약에서 베드로사도가 예수님 계신 곳에 향하여 물위를 걸어 갈 때~~

물 위를 걸어갈 때에는 예수님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가다가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거야!’

물 밑을 내려다 본 순간 물에 퐁당 빠졌습니다.


하느님을 쳐다보던 눈이 세상을 보게 되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다시 예수님께 시선을 돌렸을 때 예수님께서 물속에서 끌어내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비록 우리가 만신창이가 되어 죄악에 빠져 살았다 하더라도

주님 바라보면 삽니다.


그러나 부끄럽다! 고 주님 떠나면 죽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비록 우리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죄악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도

주님 바라보면 삽니다.


‘부끄럽다!’ 고 주님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어느 ,집에 가 보아도 예수님께서는 쳐다볼 수 있게 높이 매달려 계십니다.

십자고상을 땅바닥에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벽에 높이 걸어둡니다.

당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늘 매달려 계신 주님

사순절 내 눈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주님의 자비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기입니다.


사순절 내내 돈만 쳐다보지 주님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사순절 내내 제 과거의 상처만 끌어안고 징징거리고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현재의 하느님이십니다.


과거의 나의 죄가 진홍색같이 붉다 하여도

과거의 나의 죄악이 계곡을 차고 남는다 하여도


주님 앞에 눈물로 쳐다보며 그 분을 바라보면 삽니다.


주님 쳐다보면 기쁨이 옵니다.

주님 쳐다보면 평화가 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창조주임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주님, 이 못난 인간 만드시면서 무릎까지 꿇으셨다는 것 믿으십시오.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다는 것 믿으시고

조건 없이 사랑하셨다는 것 믿으시고

우리도 역시 그분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능력의 씨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 믿으십시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를 돌보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있다는 걸 믿으십시오.


그 분을 살리기 위해서

그 분을 쳐다보고

그 분과 눈을 맞추며 살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 밑에 가 앉아 억지로 기도 만들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쳐다만 보십시오.

그냥 쳐다보면서 “예수님!...... 예수님!.....” 그 말만 하십시오.

그 분이 우리 삶을 못 보겠습니까?

우리는 바라보는 그 대상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 방에 있는 십자가 자주 쳐다보면 예수님처럼 됩니다.

십자가 자주 쳐다보면 하느님처럼 됩니다.

신비스럽게도 늘 시선을 두는 대상으로 변해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사제의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그분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더구나 당신 몸을 직접 주셔서 천상의 양식을 통해서

우리가 창조주를 믿고

그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마음을 믿고

그 안에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천상의 약을 이 미사시간에 주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성당에 들어올 때 얼굴과 성당에서 미사 끝나고 나갈 때의 얼굴은 천지차이가 되어 나가야 합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치유와 말씀과 사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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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 성지 - photo by Y 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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