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얘야! 넌 할 수 있어!"(요셉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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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7-08 | 조회수43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열일곱 살 난 요셉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아버지의 아내인 빌하의 아들들과 질파의 아들들을 도와주는 심부름꾼이었다. 요셉은 그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창세37,2-4)
열일곱 살 난 요셉에 대해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당시는 열두 살이면 성인으로 대우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지금 열일곱 살입니다. 열 일곱 살 먹은 성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굳이 묵상하려는 의도는 보통 요셉의 의인됨을 크게 부각시키면서도 요셉이 어떠한 과정을 겪고 그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열일곱 살 이전의 요셉의 모습입니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요셉의 모습을 통하여 위안을 얻고, 또한 요셉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는 의인의 삶을 살 수 있었는지를 배워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 십과 칠"을 더한 수는 요셉이 곧 하느님의 완전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요셉이 형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께 일러바치곤 하였다"
이 대목을 어떤 분들은 긍정적으로 묵상하기도 합니다.
"요셉이 형들의 나쁜 소행을 눈감아 준다면 그것은 형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기에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것이다."
그것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저는 요셉의 속 마음을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그가 아버지께 "일러바치곤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왠지 일러바쳤다라는 어감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느낌이 오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아직 성숙하지 못한 마음 자리를 말해주고 있다고 보았고,다음의 소개 부분도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구절 같아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한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적이 있는데,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창세37,5)
그런데 요셉은 눈치가 없었는지 아버지의 편애를 등에 업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창세37.9)
보통은 한번 뜨거움을 경험하면 두번은 조심하게 됩니다.그러나 요셉은 앞의 꿈보다 더 강도가 쎈 꿈 이야기를 합니다.
덕분에 형들은 시기심만 증폭되었습니다.
장남도 아니면서 아버지의 상속자임을 드러내는 "긴 저고리를 입은 요셉,한 술 더 떠서 그의 꿈 이야기는 상속자임을 굳히는 예언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형들은 자신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여과 없이 그대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형들의 모습에서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우리는 얼마든지 마음 안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대로 살 것인가,말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 의지"입니다.
지금까지의 요셉의 모습은 "하느님 없이 선택한 자유 의지"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하느님과 함께 사는 자유 의지"의 삶을 살아내는지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형들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시기심을 하느님 안에서 식별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한 결과로 요셉은 죽음은 면하고 "그들은 그의 저고리,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창세37,24)
"물이 없는 빈 구덩이"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생명이 없는 곳, 하늘이 없는 곳,곧 광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요셉의 "출애굽"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출애굽의 여정을 겪어야 "하느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셉은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 철저하게 홀로 섰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지극히 사랑해 주던 아버지를 떠나 이제 어둡고, 목마르고, 두렵고, 그동안 접해 보지 못한 현실 앞에 홀로 섰습니다.
요셉의 몸부림을 느껴봅시다.
처음에는 얼마나 부정적으로 남의 탓을 하며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 단계가 끝나고 이젠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는 단계가 옵니다. 아마도 이 단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의 체험에 비추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지지 않고, 내가 희망이라고 붙들고 살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걷던 "그 길에서" 저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왜 애 탓이니?"
놀라운 것은 그 음성을 들음과 동시에 내 인생이 빛의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가고,지금의 이 현실이 "내 탓임"을 즉시 무릎 꿇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앞이 훤히 보엿습니다. "살 길"이 보였습니다. 그 후 저는 세례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을 깊이 체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침을 한번 먹었다고 죽을 때까지 배부르지 않듯이,정말 끊임없이 영적인 성장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산 사람 입니다. 그런데 왜 "그가 하느님 앞에 기도 했다"는 구절이 한 군데도 나오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항상 하느님과 함께 산 사람이었다."
기도와 삶이 하나가 되게 산 사람,그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이 요셉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시며 우리에게도 희망을 거시고 계십니다.
지금 요셉처럼 물 없는 빈 구덩이를 대면 하고 있다고 생각되시나요?
기뻐하십시오. 그 자리가 하느님을 뵈올 꽃자리가 될 것이기 대문입니다.
"얘야! 난 널 믿어! 넌 날 닮았어!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잖니!힘 내고 용기내! 넌 할 수 있어!아자 아자!"
아멘. 알렐루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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