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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1 조회수1,070 추천수2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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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마태오 10장 34-11장 1절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파괴를 거슬러 건설>

 

 

    교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각 시대에 특징에 따른 영성의 흐름이 있습니다. 영성은 하느님께서 각 시대를 위해 베푸신 선물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시대를 이끄는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시대에 따른 하느님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영성생활이란 하느님의 외침인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시대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인(聖人)이란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대의 아픔에 민감한 사람이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베네딕토 아빠스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당시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자 은총이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던 시대의 고통과 슬픔, 문제점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슴아파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살아가던 당시(AD 480-547) 유럽 세계는 민족 대이동의 시기였습니다. 잘 나가던 로마 제국은 힘을 잃고 쇠락해졌습니다.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해가면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농부들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헛수고였습니다. 침략과 전쟁, 파괴와 살육이 계속되던 불안정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전쟁과 파괴의 시대 앞에 베네딕토 성인은 ‘정주 수도회’ 건설로 응답합니다. 베네딕도코 성인은 ‘파괴를 거슬러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든든한 반석 위해 하느님의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로서의 소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운 좋게도 베네딕토회 소속 이태리 신학생을 알게 되어 얼마간 베네딕토 성인께서 머무셨던 수비아코 수도원,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수백 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던 대수도원이었습니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졌고, 몇 안 되는 수도자들께서 힘겹게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역력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 그렇게 견고하고 엄청난 대수도원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외부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동료 수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디 높은 산꼭대기에 수도원을 건설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꼭 외형적 수도원 건설만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무엇에 앞서 전쟁과 파괴에 맞서 평화의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폐허가 된 건물을 일으켜 세우는데도 관심이 컸었지만 상처입고 피폐해진 사람을 건설(일으켜 세우는데)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인간이 이 땅위에 똑바로 서는 것,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 사랑의 수도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한 평생 노력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다 보니 동료 수도자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게 마련이지요. 베네딕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웃들의 약점에 고정되었고 점차 마음의 평정을 잃어갔습니다. 지나치게 깐깐한 장상 베네딕토로 인해 수하 수도자들의 원성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서로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허약함을 잘 알게 된 베네딕토의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의 완고함과 무기력함, 나태함 앞에 크게 실망했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고요한 방 하나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흔들리지도 않는 장소, 더 이상 파괴되지도 않는 장소였습니다. 거기만 들어가면 하느님과 나 둘만 마주보는 아름다운 장소를 만든 것입니다.

 

    베네딕토는 드디어 건축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든든한 건축물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개인용 내면의 성체, 내면의 감실, 내면의 지성소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 결과 베네딕토는 이웃들의 결점과 실수, 죄와 문제들 앞에서도 더 이상 좌지우지하지 않게 되었고, 그제야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자신의 힘만으로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큰 문제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는 오늘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는 회칙을 밥 먹듯이 어기는 수도자들, 일은 쥐꼬리만큼 하면서 밥은 산더미처럼 먹는 게으른 수도자들, 엄격한 잣대를 대는 자신을 박해는 동료 수도자들이란 큰 ‘도전’ 앞에 그들을 탓하고 공격하기보다는 자신의 깊은 내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진지한 자기 성찰 작업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내면 안에 깃든 짙은 어둠을 보았습니다. 오랜 투쟁이 있었겠지요. 드디어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 앉아있는 베네딕토를 빛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베네딕토의 생애 안에 일종의 바닥 체험, 죽음 체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베네딕토의 눈을 덮고 있던 막 하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던 것들이 명료하게 보이는 영적 식별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 특히 동료 수도자들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료의 어둠과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동료들과의 관계는 문제투성이였는데, 그 모든 문제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베네딕토 성인께서 자신의 영혼 안에 건설했던 내면의 방, 내면의 성채, 개인 감실 때문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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