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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12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1 조회수324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0-2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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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실 때, 예수님은 신기한 일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곧 기적을 행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 간접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날만큼 놀라운 것이었고, 구름같은 이들이 예수님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적들을 가끔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는 곳에 놓여진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에게는 여지없이 행하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난 곳은 분명 '기적의 도시'들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감탄한 일들도 많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일텐데도 예수님은 왜 이리 화가 나 계실까요?

 

모두가 다 아는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로 멸망한 소돔보다 못하다는 이 저주어린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참 힘든 일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우리와 전혀 다른 분으로 봅니다. 사람이 되어 오셨다고는 하나 어차피 우리와 다른 분, 우리와 함께 사셨으나 근본부터 다른 분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시선입니다. 성자를 고백하고 그 외아들의 모든 것을 아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이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의 판단과는 달리 2천년 전에는 그분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 안에서 조차 어떻게 등장했는지 모르는 분이셨고,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의인도 죄인도 아닌 이상한 분이셨습니다. 특이할 수는 있으나 우리처럼 신앙으로 고백하는 일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2천년의 시간을 두고 지금 우리가 아는 예수님과 그 옛날 실제 예수님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바라보는 시선에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기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예수님의 본 모습을 알고 있기에 가정할 이유 없이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적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기적'이지만 예수님께는 그냥 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분을 이해하려면 그것에 대한 놀라움부터 지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신기한 일이 예수님께는 단순한 재능이라고 보았을 때, 이 일이 일어난 이유를 보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합니다.

이 기적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사실 그 이유는 아파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낳게 해주시는 기적으로 사람들의 신앙을 일깨우신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마귀들려 버림받은 이들을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온전한 삶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었고, 그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해주신 실천이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나같이 죄인이라 판단받고 어울릴 수없는 인생에게 베풀어진 변함없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들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놀라운 재능을 지닌 사람들도 보통의 사람에겐 놀라움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로서는 평범한 기술을 가진 것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재능을 통해 그 재능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가치에 집중할 때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적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기적에만 들뜨고 신기해하면서 정작 그분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그래서 더욱 더 큰 놀라움을 위해, 체험을 위해서만 그분을 따른다면 그 수효가 많다하여도 그분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 넘쳐난다 하여도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은 사치스러운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그것을 아무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시선이란 어리석음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보아서라도 하느님을 믿게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구경거리가 아니십니다. 그것으로 사람의 눈길을 빼앗는 분으로 전락시킨다면 우리는 그분이 주신 우리의 생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화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은 사랑을 주셨으나 그 숱한 사랑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전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만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적의 소문이 넘쳐날 때 수많은 죄인들이 그 도시를 찾을테지만 그들의 치유가 넘치는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것보다 그 도시를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 화가 나신 것입니다.


그분의 기적을 보고서도 그분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도시.


예수님은 단 열명의 의인이 없어 사라져간 소돔을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화려한 은총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옛날과 지금의 시선은 그리도 다르건만, 그분에 대한 몰이해는 옛날도 지금도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여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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