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2 조회수953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ghty deeds done in your midst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long ago have repented in sackcloth and ashes.
But I tell you,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o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you.
(Mt.11.21-22)
 
 
제1독서 탈출기2,1-15ㄴ
복음 마태오 11,20-24

며칠 전 새벽을 열며 묵상 글에 올릴 적당한 사진을 찾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에 관한 글을 쓰고 새벽에 해가 뜨는 사진을 찾는데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새벽에 일어나 이슬이 맺힌 장미꽃을 찍은 사진을 대신 올렸지요. 참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왜 새벽에 해 뜨는 사진이 없을까 싶었습니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해 뜨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 뜨는 것은 항상 동해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제가 있는 인천에서 해 뜨는 광경을 본 적도 그래서 찍은 적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 뜨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해 뜨는 것을 본 적 없다고 해서 해가 뜨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해 뜨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해 뜨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행복이란 것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행복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대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서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똑같이 주어지는 행복. 문제는 내 스스로 행복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똑같은 사랑을 주시지만, 더 특별히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저 역시 여기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하기만 한 저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주신 주님. 특히 신부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은총과 축복을 받았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때때로 마치 제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능력인양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커다란 내 자리를 만드는데 온 힘을 다 쏟곤 합니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모습을 취하는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오늘의 복음을 묵상해봅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심하게 꾸짖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기적을 일으킨 고을이지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면서 주님 에 맞게 철저하게 살아가려는 모습보다는,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나의 것인 양 착각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우리가 될 때, 복음에서 꾸짖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우리 각자각자에게도 똑같이 울려 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난 못해" 이 말을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해볼 거야" 이 말을 한다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조지 P. 번햄)



 

행복찾기


자유롭게 나는 새

어떤 책에서 읽은 글입니다. “제가 아는 이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흔두 살에 암이 발견됐습니다. 의사가 일 년밖에 못 산다고 했어요. 입원해 있으니 많은 친구가 위로 방문을 왔습니다. 한 친구가 환자를 위로하고 돌아가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날 죽을 사람이 앞으로 일 년이나 더 살 사람을 위로하지 않았습니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 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일 년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생깁니다. 사로잡힘에서 놓이면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곳에서 자유로워질 때 괴로움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Free as a Bird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