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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2 조회수532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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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사랑에는 그 종류가 많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

 

그런데 제일 마음이 아픈 사랑이 뭐냐!

 

짝사랑~

 

 

 

자글자글한 우리 할머니들도 소싯적, 꽃다운 나이가 다 있었어요.

 

짝사랑 한 번도 안 해보고 인생을 끝낸다면 참 불행한 일이지요.

 

 

짝사랑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는 선택이 자유롭다.

 

연상이든. 연하든. 그 대상이 신부님이든, 수녀님이든...

 

입으로 표현만 안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돈이 안 든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하는 짝사랑은

 

상대방이 알지도 못하게 하니까~

 

 

 

세 번째 장점은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소싯적의 짝사랑은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그 옛날을 뒤돌아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을 수 있어요.

 

문제는 하느님은 절대로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교우들은 세례 받고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끝나요.

 

짝사랑의 첫 번째 장점이 선택이 자유롭다고 했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그게 안 통합니다.

 

오늘은 돈, 내일은 내 건강, 모레는 취미생활.......

 

그러다 일주일에 한 시간, 성당에 몸뚱이는 나와 앉아 있지만

 

이미 뇌는 뇌사상태에 빠져 앉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것 저 것 중에 하나 선택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하느님과의 사랑입니다.

 

 

 

두 번째 우리 인간끼리의 짝사랑의 장점은 돈이 안 들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7대 독자 아들을 내어놓아야 될 때가 있습니다.

 

7대 독자 아들이 청천벽력같은 선포를 해요.

 

“어머니, 아버지 저 신부 될게요.”

 

왜 하필 내 아들이...뒷집에 애 많은 김 회장 집 아들이 아니고~

 

 

 

세 번째 장점,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고 그랬지요?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보면...처음에는 봐주는 것처럼 보여요.

 

하느님이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즉결심판을 하신다면

 

지금 우리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니가 지금은 강아지처럼 잡초처럼 살지만...

 

너도 회개하면 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겁니다.

 

 

 

식물세계에서는 잡초로 태어나서 잡초로 죽지만

 

비록 잡초처럼, 쓰레기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성인, 성녀가 되어서 세상을 마치는 것이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금 즉결심판을 안 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눈이 어두워 못 보시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하느님을 짝사랑하는 사람은 기초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실로암 탑에서 무너져 죽은 바로 그 사람들이

 

아이티에서, 칠레에서, 지진 때문에 죽은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아서 깔려 죽은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오늘 복음에서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두셨다!’

 

이 세상 모든 그릇 중에서 제일 약하디 약한 그릇이 질그릇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약한 질그릇이라도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존재이유가 달라집니다.

 

이 질그릇에 다이아몬드를 담아두면 패물함이 됩니다.

 

이 질그릇에 쌀을 담으면 쌀독이 됩니다.

 

이 안에다 오줌을 누면 요강이 됩니다.

 

이 안에다가 똥을 누면 똥통이 됩니다.

 

 

 

더러운 냄새가 풀풀 나는 내 악습, 욕심, 교만, 우상숭배....

 

내 질그릇 속에 있는 그것들을 끄집어내서

 

영적 보화로 채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사제인 저도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혼자 있을 때는 내 질그릇이 부서지지 않게끔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저 위에 계신 성모님은 석고상입니다.

 

6.25때 인민군들이 저 성모상을 깨부수려고 총알을 수 백발을 쏘았지만

 

성모님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성모님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 같은 존재이시지만

 

총알을 받고도 견디셨고, 당신 몸에 성모칠고를 담아두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개의 첫 단추를 잘 모릅니다.

 

회개는 철저한 방향전환입니다.

 

회개는 몸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돌려야 됩니다.

 

몸만이 아니라 생각끼지, 정신까지 돌려야 됩니다.

 

 

 

많은 교우들이 후회로 시작해서 후회로 끝나는 것을 회개로 착각합니다.

 

미사보고 나오는 교우들에게

 

“왜 주일 지키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약 80%가

 

“성사 보는 게 부담스러스러워서입니다.”

 

그런 정신머리로 미사 때 하느님을 만나고 은총을 받겠는가!

 

 

 

대부분 많은 신자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신이 미운 겁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존심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성사를 보더라도 다시 악습에 더 떨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한 그것뿐입니다.

 

 

 

후회의 대표적인 사람이 유다스입니다.

 

유다스는 예수님 딱 한 번 배반했지만

 

예수님 배반하기 전부터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다스는 열 두 사도 가운데 돈주머니 관리하는 총무였기에

 

끼니때마다 제일 걱정을 많이 한 것은 유다스였습니다.

 

돈주머니는 비어있고, 그러던 참에 유혹이 왔습니다.

 

대사제들이  은전 30냥을 줄 테니, 네 스승을 우리한테 넘겨라!”

 

그 당시 은전 30냥은 노예 한사람을 사고파는 값이예요.

 

은전 30냥만 있으면 열 두명의 식구들이 적어도 석 달 동안 빵을 사먹을 수 있었어요.

 

유다스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 했지요.

 

 

 

유다스는 어떤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했느냐 !

 

‘내가 아는 스승님은 그렇게 호락호락 잡혀가실 분이 아니야~

 

처음에는 잡혀가시는 척 하다가, 담 모퉁이 돌아서면 도술을 보여서

 

그냥 그놈들을 다 물리치고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나실 분이야!

 

이러면 돈은 돈대로 들어오고 우리 스승님을 살아서 들어오니

 

꿩먹고 알먹고.....'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데, 스승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끌려가셨지요?

 

유다스는 그 뒤를 쫓아가면서

 

‘지금쯤 뭔가를 보여주실 때가 되었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끌려 올라가시는 거야.

 

나중에는 못 박혀 돌아가셨지요.

 

 

 

유다스는 절망했어요.

 

‘내 스토리는 이게 아닌데~ 내가 아무리 돈에 환장한 놈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승을 돈 받고 팔 놈이 아닌데.....’

 

 

 

유다스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성모님과 열한 제자들이 있는

 

다락방으로 찾아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질 급한 베드로는 몽둥이로 때려죽이려고 했겠지만 성모님이

 

“베드로 너 이놈, 너는 세 번이나 배반했잖아, 너도 할 말 없어!”

 

 

유다스가 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성모님 앞으로 왔으면

 

유다스는 회개하여 지금 성유다가 되었겠지요.

 

유다스는 구원 받고 안 받는 것도 자기가 선택하고 비참하게 죽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어요.

 

 

 

‘후회’ 는 자기 중심적이지만 ‘회개’ 는 하느님 중심적이에요.

 

내가 이 죄에 떨어졌을 때 성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내가 이렇게 막 살았을 때 성령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셨을까!

 

내가 함부로 남을 판단할 때 예수님이 뒤에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하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드로였지요.

 

첫닭이 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이 생각난 겁니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덜 미안하기라도 한데

 

예수님은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회개에는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가 있는데

 

적극적인 회개를 많이 해야 됩니다.

 

 

주일 빠지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이런 것들은 소극적인 죄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야만 회개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첫 번째는 우상숭배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느님이 첫째 자리가 아니고

 

자식, 내 몸뚱아리가, 취미생활, 돈이... 첫째 자리입니다.

 

 

 

여러분들 첫째자리에 계십니까?

 

아닐 겁니다.

 

현대판 우상숭배는 금송아지가 아닙니다.

 

점집에 찾아가는 게 우상숭배가 아니라

 

내 첫째자리에 하느님보다 위에 있는 것이 그게 다 우상입니다.

 

 

 

24시간 내내 자식걱정을 한다면 자식이 우상덩어리입니다.

 

24시간 내내 내 건강을 생각한다면 건강이 우상덩어리입니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적극적인 회개의 첫 번째는 내가 늘 우상숭배에 빠져 산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인 선행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착하게만 산다고 천당 못 갑니다.

 

성서에 착하게 살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가 어디에 나옵니까?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만 됩니다.

 

 

 

세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양심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 화해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罪입니다.

 

 

 

네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영적질투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이 신앙적으로 크는 것도 질투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해지는 것도 샘이 납니다.

 

영적질투가 우리의 튼튼한 기초를 제일 좀먹는 것 중의 하나일겁니다.

 

 

 

마지막으로 무관심하게 사는 겁니다.

 

가족들에게, 피붙이에게,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무관심하게 사는 것, 적극적인 회개거리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빈 그릇이 되십시오.

 

 

후회가 아니라 회개합시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입장이 되어서

 

내가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찾아봅시다.

 

 

 

‘소극적인 회개거리’ 만 묵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회개거리’ 를 깊이 묵상해서 이번 판공 때

 

우상숭배하고 살았는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옳은 일을 행치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영적질투에 빠져 살지 않았는가!

 

무관심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내 영혼의 작은 티라도 끄집어내어서,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은

 

그때그때마다 준엄한 검사가 되어서 끄집어내어야 됩니다.

 

회개치 않으면 망하리라!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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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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