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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사악 정말 모르고 야곱을 축복했나?(묵상)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3 조회수620 추천수8 반대(0) 신고
 
 
 
 
+샬롬 샬롬
 
이사악은 정말 모르고 야곱을 축복했나를 묵상해 봅니다.
이사악은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이백 명도 아니고 달랑
둘인데 모를리도 없지만 그보다 이미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께서 레베카의 기도의 응답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세25,23)
 
여기에서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레베카가 어떻게 주님께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잠시 보고자 합니다. 
레베카는 이방신을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입니다.(창31,19.30참조) 그런데 그녀가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이사악의 전교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로는 늘 하느님 체험(창세22,9-13)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이고,결정적인 동기는 레베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는데 남편 이사악이 하느님께 기도하여 임신을 했습니다. 이사악의 하느님 체험 이야기와 이사악의 기도의 응답으로 임신함으로써 레베카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미 복음 선포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는 사실이 신비롭습니다
 
이사악은 주님의 말씀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사셨다고 보아집니다. 마치 성모님처럼 (루카2,19참조)말입니다.
이 말씀(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들으려고 두 아들을 얼마나 관심있게 살폈겠습니까? 그럼에도 왜 두 아들을 편애하는 삶을 살았는지는 그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믿음이 시험받는 시점에서 희생된 어린 양입니다. 얼마나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맛보았겠습니까? 그것이 상처가 되어 죽음 앞에서 부인을 동생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성격과 닮은 야곱을 사랑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보통 자신이 가지지 않은 성향을 갈망하고 지향합니다. 이 점이 이사악도 우리와 똑같다는 점으로 이렇게 못났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메세지입니다.
 
축복을 받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말 다른 것은 다 속일 수 있지만 목소리 만은
똑같이 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그래서 이사악도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그는 야곱의 손에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창세27,22-23)라고 말합니다.
 
그 동안의 두 아들이 보여주는 삶으로 누가 정말 하느님의 축복권을 받을 만 한지 아버지가 몰랐을까요? 우리들이 아직 어렸을 때 부모님들은 다 아시면서 얼마나 우리들에게 속아주시며 사셨고, 지금 우리도 자식에게 또 얼마나 속아주며 살고 있습니까.
이사악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축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야곱이 얼마나 축복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사악은 자신을 위해서 사냥을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그것을 먹고,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레베카의 세심한 배려로 "빵"(창세27,17)이 준비가 되었고, 더 놀라운 것은 어떻게 알고 야곱은 포도주(창세27,25)를 준비하여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레베카는 에사우의 옷 가운데서 가장 값진 것을 꺼내어,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혔습니다.(창세27,15)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때도 "빵과 포도주"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만찬에는 없으면 안되는 것인 모양입니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좋지 않아 한 자리에서 공동으로 축복은 못하지만 어머니 레베카가 형의 옷을 그에게 입혀 줌으로써 이미 형의 권리가 아우에게 넘어갔고,결과적으로 두 부모님의 인정을 받은 셈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사우는 무엇을 가지고 축복 받으러 왔을까요?
그는 달랑 사냥한 고기로 별미만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묵상하면서 이미 이사악은 레베카가 자신의 말을 엿듣고 일을 이렇게 끌고 갈 것도 알고 있었고, 형이 아닌 동생에게 축복을 해 주려니 그러한 절차가 필요했겠다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에사우에게도 깊은 상처를 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어짜피 형과 동생의 사이는 그렇고 그랬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 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에사우가 만약 아버지가 알고도 동생을 축복해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죽음 앞에서 받았던 상처보다 더한 상처를 안고 살아갈 당신의 아들 에사우를 향한 사랑을 느끼며 가슴이 뭉쿨해 집니다.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이사악은 두 아들을 다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 주님의 사랑임을 느낍니다.
 
이사악의 사랑의 표현을 소개합니다.
에사우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축복해 달라고 하자 "너는 누구냐?하고 물으니 그가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하자 이사악은 깜짝 놀라 떨면서 말하였다"(창세27,32-33)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보여 줍니다. 난 정말 몰랐다. 내 뜻이 정말 아니다.
그렇게 보여 줌으로서 에사우의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은 아버지의 몸부림임이 느껴집니다.
사랑하기에 아버지는 오늘도 이렇게 몸부림을 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놈인지 몰라서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잘 아시기에 축복해 주시는 그 사랑에 눈물이 납니다.
주님!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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