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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 -반영억 신부-(마태12,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5 조회수59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 7 15일 금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
마태오 12,1-8)

 I

 

보나벤투라 성인은 1218년 이탈리아 바뇨레아 근교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으며, 파리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훗날 알바노 교구의 추기경으로 활동한 성인은 그리스인들과 일치를 이루고자 열린 제2차 리옹 공의회(1274년)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1482년 성인으로 시성되었고, 1588년에는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

모세가 주님의 기적을 계속 보여 주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도록 이끌지만 파라오의 마음은 완고하여 이를 듣지 않는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며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의 파스카 축제의 기원이 된다(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자,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율법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이 사람을 위해 있음을 알려 주시며 자비와 사랑이 모든 법의 우선임을 가르치신다(복음).

 

 

오늘 복음을 읽으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밀 이삭을 뜯어 먹을 정도로 배고픈 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라 살 것인지 질문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의 사람들 앞에서 들이대는 잣대는 율법이라는 잣대입니다. 우리가 쉽게 걸려 넘어지는 논리입니다.
사랑은 사라지고, 의무와 책임으로 점철되어버린 신자생활에 대한 도전입니다
.
안식일의 정신, 주일의 의미는 사라지고, 의무를 실천하는 데 급급한
우리들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말씀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최고의 겸손을 살고자 하는 것은 나의 삶을 고통으로 옭아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희생을 통한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사랑의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심판자가 되어 타인의 행동과 타인의 신앙생활을 평가하고 단죄하기에 급급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은 하느님의 자비,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차원에서 이해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끊임없이 우리를 흠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편 작가는 일찍이 악인들의 못된 짓을 체험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재앙을 모르는 그자, 저주만을 퍼붓습니다. 마을 으슥한 곳에 숨어 앉아 죄 없는 사람을 몰래 죽이려 그의 눈은 힘없는 이를 살핍니다. 그는 덤불 속의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서 노립니다. 가련한 이를 잡아채려 노리다가 그물로 끌어당겨 잡아챕니다. 이렇듯 가련한 이는 두들겨 맞아 쓰러지고, 힘없는 이들은 그의 폭력에 넘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을 곳곳에서 노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악에서 벗어나려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

  -반영억 신부-

가끔은 많은 것을 아는 척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무안을 주면 다음부터는 좀 겸손해 질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고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시쳇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그를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성경공부를 많이 했다고 뽐내며 본당신부와 맞서기도 합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뭐합니까? 말씀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교만함이 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당시 안식일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항의하자“성전 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하시고“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밀이삭을 잘랐다는 것은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긴 것이고,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면 타작하지 말라는 조항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손으로 비벼서 후후 불어 껍질을 털어냈다면 키질을 하지 말라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편지를 뜯는 것도 불을 지피는 행위도 금지사항입니다. 닭이 안식일에 알을 낳았다면 그 역시 먹을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렇게 철저히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올가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인이 살고 있는 이웃에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려서 나갔더니 자기 집의 가스 불을 꺼 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스 불! 자기가 끄면 되지 그런 부탁을 하러 오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안식일이 되기 전 불을 켰는데 끄기도 전에 안식일이 온 것입니다. 불을 지피는 일을 금지하고 있으니 안식일이 다 가기까지 켜 놓을 수도 없고……..

예수님은 이런 겉모양에 묶여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법조문을 지키기에 앞서 법의 의미와 내용을 살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이웃에게 자선을 베푼 다음 의식상의 규정을 준수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알맹이 보다는 껍데기에 충실해서 야단을 맞았다면 오늘 우리는 알맹이를 빌미 삼아 규정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여 꾸중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주님의 날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기 보다는 내 취미와 즐기는 일을 더 우선시 하고 기도와 미사는 뒤로 미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날을 주님과 함께 쉬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거룩함이 넘쳐나게 되고 이웃도 우리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폼 잡지 말고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19)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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