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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5 조회수90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Mt.12.7)
 
 
제1독서 탈출기 11,10ㅡ12,14
복음 마태오 12,1-8
 
저는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편입니다. 늦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먼저 기다릴 생각을 하고 항상 일찍 약속장소로 갑니다. 이러한 저의 습관은 미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 미사 시작 30분 전에는 들어가서 고해성사도 주고, 기도도 하면서 미사를 위한 저 나름대로의 준비를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이러한 습관을 전해주셨기에 지금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인데 어렸을 때 안 좋은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 중학교 때로 기억이 됩니다. 그날도 일찌감치 미사를 위해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어떤 자매님께서 어떤 짐을 성당의 창고로 옮기는데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미사 시작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과 함께 짐을 옮겼습니다. 짐을 다 나르고 성당에 들어갔는데, 글쎄 미사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를 시작하신 신부님으로부터 늦었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이지요.

제가 게으름을 피워서 미사에 늦게 참석한 것도 아니었고, 나쁜 일을 하다가 미사에 늦게 참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 습관적으로 미사에 늦는 것도 아닌, 처음으로 미사에 늦게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야단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지요.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안 좋은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현재 신부가 되어 늦게 미사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 종종 그때가 떠올려집니다. 사실 저 역시도 미사 도중에 신자들이 뒷문을 열고 들어오면 분심이 생겨 힘듭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싶은 생각이 생길 때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서 ‘이 분 역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야.’, ‘올 수 없는 상황인데도 늦게라도 참석하신 거야.’라는 생각을 하니, 괜히 화를 내고 혼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바리사이들이 밀 이삭을 뜯어먹는 제자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발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밀 이삭을 뜯어먹는 것이 무슨 죄가 될까 싶지요. 그러나 밀 이삭을 뜯는 것을 추수하는 것이라고 확대해석하고, 밀 이삭을 먹기 위해 손으로 비벼 겨를 날리는 것을 타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다보니,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내 기준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지 않으며, 주님을 진정한 안식일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욕을 주는 사람은 모래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 모욕을 받은 사람에게는 청동에 끌로 판 것처럼 새겨진다.(조반니 과레스키)




아들자랑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어도 아들자랑을 안했어요.

아주머니 두 분이 자기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주머니 1: 우리 아들은 얼마나 착한지~ 반찬 투정하는 일이 전혀 없지 뭐예요~ 또 돈 달라는 소리도 할 줄 모른다니까요~ 호호호

아주머니 2: 어머~ 우리 아들도 정말 착해요... 반항이 뭔지도 모르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는커녕 집안에서만 착하게 있어요~ 호호호

아주머니 1: 그래요? 아드님이 몇 살이에요?

아주머니 2: 이제 돌 지났는데...^^;; 그쪽 아드님은요??

아주머니 1: 이제 막 100일 됐어용~;;;;ㅎㅎㅎㅎㅎㅎㅎ

사실 자식 자랑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자랑하는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이 기준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착하고 똑똑한 것이지,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별 차이가 없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자녀를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자기 자녀에게만 자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기준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기준을 적용시키면 어떨까요? 아마 모든 이가 착하고, 똑똑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남들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내가 아닌, 모두에게 너그러운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Dev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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