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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6 조회수79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 smoldering wick he will not quench,
(Mt.12.20)
 
제1독서 탈출기 12,37-42
복음 마태오 12,14-21

밤늦게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종종 포장마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어묵을 꼭 사 먹습니다. 이 어묵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단순히 기분이나 분위기일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만들면 거리 포장마차 같은 어묵 맛이 도대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요리 전문가의 말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분이나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어묵 맛이 좋은 것이랍니다.

어묵은 은근한 불에 오래 익혀야 제 맛이 나는데, 집에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익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어묵 한 그릇 먹겠다고 집에서 하루 종일 끓일 수 없지요. 그래서 30분가량이면 먹을 수 있도록 센 불에 빨리 익히는데, 이 상태에서는 그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빨리하면 무엇이든 좋은 것 같습니다. 시간은 금이라고 하니까 금 같은 시간을 통해서 빨리 해결을 하면 돈 버는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다림의 시간, 느림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무조건 ‘빨리빨리’, 무조건 성급하게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은 큰 잘못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이집트 시나이 산을 새벽에 등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트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 새벽 일찍 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지요. 그런데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해가 뜨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고, 정상이 너무나 추운 것입니다. 빨리 해가 뜨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추위에서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해가 빨리 떴을까요? 아닙니다. 해는 강제로 솟구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두른다고 해가 뜨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때로는 기다려야 할 때가 있으며 또한 느리게 가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서두르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픈 이들을 고쳐주면서 군중들에게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왜냐하면 아직 당신을 알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일분일초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음을 알리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아직 당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린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함구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만약 함구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로 만들었다면, 어쩌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완수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진정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느린 길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너무 ‘빨리빨리’를 외치다가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다.(에릭 호퍼)




괜찮아요

2004년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일출 사진

언젠가 어느 성당에서 강의를 마친 뒤, 신자들로부터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로 사진을 찍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성당이 더워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제 모습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사진을 찍으면 별로 좋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중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제가 지금 꼴이 말이 아니라서요. 나중에 찍으면 안 될까요?”

이 말에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괜찮아요.”

이분에게 ‘자매님은 괜찮을지 몰라도, 저는 괜찮지가 않아요.’라고 화를 내고 싶었습니다.

결국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서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기분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기왕이면 괜찮은 모습이 찍히는 것을 원하지, 형편없는 모습이 찍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문득 저 역시 남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만 괜찮다는 생각으로 말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만 괜찮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괜찮은 것’을 먼저 생각해야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나만 괜찮은 것... 너무 이기적인 것 같지 않나요?
 
 

The Lark in the Clear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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