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기질투는 어디에나 -반영억 신부-(마태12,14-21) | |||
---|---|---|---|---|
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7-16 | 조회수52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15주간 토요일 (마태12,14-21)
그때에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없애려 모의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피하십니다. 그들과 투쟁하러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토론하고 따져도 당신을 위한 일에는 침묵하셨습니다. 시기질투는 어디에나 -반영억 신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복을 받기 때문에 좋은 일을 끊임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데도 선망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견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병을 고쳐주시며 당신의 소명에 충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를 모의 하였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봐 주면 좋으련마는 눈엣가시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 사촌이 땅을 사면 배를 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반대에 대응하지 않으시고 한 발 물러서는 지혜와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며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품으셨습니다. 다투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고 자비로운 손길로 버림 받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을 치유 시켜 주시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병을 고쳐 주시면서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공을 감추시고 결코 기적을 위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철저히 아버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구원사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좋은 일을 해 놓고는 생색을 내다가 그 공을 다 잃고 맙니다. 선한 지향을 갖다가도 이내 시기와 질투심에 그 좋은 뜻을 놓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6,1) 고 하셨건만 그 말씀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고,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서로 기도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어진 사람도 미워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봄비가 기름 같지만 행인은 그 진창길을 싫어하고, 가을 달은 밝고 아름답지만 도둑은 그 밝게 비추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거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신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