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로운 시작 - 7.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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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7-16 | 조회수35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1.7.16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탈출12,37-42 마태12,14-27
새로운 시작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늘 새로운 탈출(exodus)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독서 중 엘리야의 승천에 대한 기사(2열왕2,1-15)가 말없는 위로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승천으로 인한 새로운 시작의 희망임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더불어 에녹과 모세의 승천도 생각났습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5,24).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 그분께서 그를 모압 땅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히게 하셨는데, 오늘날 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신명34,5-6).
엘리야는 물론 두 분 다 평생 하느님과 늘 동행했던 분들이며 승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일깨워주는 생생한 희망의 표지가 된 분들입니다. 주님 안에 항구히 정주하는 이들은 이미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의 승천의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침성무일도 시편 한 구절도 생각이 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움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매일 아침마다 주님께,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새로운 반복의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 읽은 어느 현자(賢者)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역사에서 로마가 망하는 것을 보면 망할 때가 되니까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더라. 예외 없이 그런 역사는 반복된다. 예외 없이 그런 나라는 망한다. 요즘 걱정되는 게 양극화가 아주 극심하다. 일반 평균 수준이 아니라 OECD 국가 중 가장 열악한 수준이며 이 양극화의 심화가 망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뜻있는 이들의 공통적 우려 사항입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됩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파멸로 가는 부정적 반복이 아닌 희망에 넘치는 늘 새로운 시작의 반복의 삶을 사는가가 우리의 영적과제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이집트에서의 탈출로 고생도 끝인 듯 했는데 새로운 고달프고 힘든 광야여정의 시작입니다. 역시 끝과 시작이 연속되는 반복의 삶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타성적인 반복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날로 깊어지는 새로운 시작의 반복입니다. 바로 끝과 시작의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의 전례입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도 대대로 주님을 위하여 이 밤을 새우게 되었다.”
바로 이 파스카 축제의 전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늘 새롭게 시작하는 희망의 원천이 되었음을 봅니다. 우리의 경우는 매해 파스카 성삼일 중 성토요일이 되겠고 이어 주님의 파스카 부활대축일에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매일이 파스카 축제입니다. 하루의 끝과 시작의 분기점에 자리 잡은 파스카 축제인 매일미사가 늘 새로운 시작의 하루를 살게 합니다. 매일미사를 통해 우리의 희망이신 주님의 종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모심으로 우리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종처럼 항구한 겸손과 자비의 평상심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 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아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12,19-21).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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