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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1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6 조회수31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17일 연중 제 16 주일 농민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43<또는 13,2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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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좋은 씨가 뿌려져 자랍니다.  그리고 그 씨앗 사이에 몰래 뿌린 가라지가 자라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농사법과는 달리 이 농부는 이 가라지를 어릴 때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가라지를 어릴 때부터 뽑아 버려야 곡식이 더 풍성하게 여무는 이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농부는 일꾼들의 청을 듣지 않고 수확 때까지 그냥 두겠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의 해설은 이미 주님께서 주셨으니 우리는 이 비유에 사용된 밭, 씨앗, 가라지, 일꾼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그냥 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우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선악이 함께 있는 이유 판단이 바로 내려지지 않는 이상한 이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이상했던 세상, 하느님의 정의가 분명 서 있음에도 우리는 상황 마다 엇갈리며 누가 선인인지 악인인지조차 혼돈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내용은 비유라기 보다 우리의 삶을 더 잘 보여주는 듯이 보입니다. 이야기 속에 밀과 가라지는 이미 정해진 대로 세상에 뿌려지지만 정작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수확할 농부의 몫으로 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 복음 말씀 그대로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선과 악이 함께 있고, 누가 정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지 불확실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와 해설을 통해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그 수확의 날 하느님이 가라지를 구분하시는 방법에서 드러나는 바를 잘 기억하면 말입니다.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가라지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밀이 자라는 데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양분을 빼앗아갑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불의를 저지르는 행동들을 복음은 가라지의 역할로 설명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판단을 받고도 억울해하고 이를 갈 이들이 가라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하느님이 심으신 좋은 씨앗이라면 가라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전혀 설명되지 않는 밀은 좋은 곡식을 통해 세상을 생명으로 넘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가라지가 옆에 있어도 성장을 방해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힘을 빼더라도 실망하거나 화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 낱알을 내어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을 제공하는 것이 밀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선만 존재하지 않고 악도 함께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가라지를 뽑을 생각보다 밀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분명 이 밀은 그 시작부터 "좋은 씨앗"이 출발점이니 그것은 하느님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랑하기 쉽지 않은 이유들을 이해하고 근본에 충실한 것이 밀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삶이 그래서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서도 힘이 빠지는 일입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자고 몇 번을 다짐해도 그 선한 인생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수라는 것에 실망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두가지 다른 비유는 우리에게 또다른 설명과 힘을 선사합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하늘 나라를 이루는 일은 그렇게 눈에도 안보이고 작용도 안할 것 같은 선함입니다. 그 착함과 사랑이 보이지도 않게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누구라도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고, 모두가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풍부한 양식이 되는 것. 그렇게 쉼과 생명이 될 수 있는 그 씨앗이 좋은 씨앗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씨앗임을 명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씨앗은 그냥 뿌려져서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라지들 사이에서도 생명의 희망으로 자라나는 인격을 지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가 누군지를 꺠닫고 자라는 좋은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우리는 뿌려졌습니다. 우리가 좋은 씨앗인지, 가라지 씨앗인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씨앗이라면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살아가며 제대로 생명을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 생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키워 주변의 모든 이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듭시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살맛나는 양식을 줄 수 있도록 살아갑시다. 


누가 기억해도 눈부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시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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