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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인/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8 조회수512 추천수10 반대(0) 신고
 
 

밴쿠버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비행기를 타고 캘거리에 저녁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록키의 가을을 뚫고 힌튼이라는 인구 약 만명이 사는 조그만

도시에 들렀습니다. Banff, Jasfer 를 지나서 가는 여정 내내 산 중턱까지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은 전부가 샛노란색으로 단풍이 들어있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Lake Louise는 호숫가에 서 있는 고풍스런 Faremont Hotel과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 들과 너무 잘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만년설이 녹아서

손을 담그면 얼어버릴 듯한 호수물을 만지며 꼭 다시 들러야겠다는 다짐을

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느님의 작품 앞에서서 느낄 수 있는 그 전율의 신비를

어찌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쟈스퍼를 지나서 힌튼으로 향하는 길은 곳곳에 황소만한 엘크 사슴들이

도로 가에 까지 나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지나던 사람들이 차를 멈추고

사진기 셔텨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역시 그 놈들은 그 땅의 원래 주인들답게 늠름하게 일상을 즐기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흥분한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가끔 나그네들이 그 들의 편리를 위해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길을 건너는 주인들을 충격하여 죽게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힌튼에서 만난 한 신자분도 저를 만나기 이틀 전 밤에 엘크를 들이받아

헬리콥터로 구조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도로를 중심으로 이 쪽과 저 쪽으로 부른다지만 그 놈들에게는 그런 경계가

어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그 들의 길을 예전처럼 다니길 원하는데

사람들은 사슴들을 '보호'한답시고 도로 양 변에 끝이 보이지 않을 철책으로

마치 전쟁이 막 끝난 휴전선처럼 경계를 만들어 놓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주변의 하느님 작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들의 작품,

검은색 아스팔트와 철책선을 따라 힌튼에 도착하였습니다.

힌튼은 록키의 중턱 안에 잘 파묻힌 도시로 그 주변을 통과하는 저에게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지났던 광야를 쉼없이 연상케 하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Cedar(향나무)의 키만큼 높은 3층 호텔방에서

여정을 함께 했던 해인데레사님 가족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드는

기분은 또 저를 너무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근처의 캐나다 성당에서만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한인 신자들과

미사를 올렸습니다. 그 미사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고해성사부터 마지막 파견성가까지

눈물과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오랫만의 한국어 미사가

더 없이 반가웠던 모양이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타국에서의 생활 가운데

오랫만에 먼 곳을 돌아 방문한 한국인 신부와 함께 드리는 모국어 미사는

그 분들에게 광야 한가운데서 만나는 '영혼의 만나'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미사 내내 그 분들과 젖은 눈빛을 교환하면서 '광야'를 생각했습니다.

광야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을 돌아다닌 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거친 시련의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를 거치지 않고는

어떤 이스라엘 백성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듯이, 그 분들에게 역시

힌튼이라는 광야체험은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을 체험하는데 더 없이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 분들은 오랜 시간의 광야 체험 속에서

하느님과 가까워졌기 때문에 거친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드릴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거친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 같은 제 부족한 강론에도 그 분들은 진정으로 저에게

깊은 감사를 표현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사제의 존재이유'를 너무나

분명하게 다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었지요...



사제는 힘들고 외롭고 지친 영혼들이 지나는 광야를 언제나 함께 걸어가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결코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들보다

먼저 가나안에 입성하는 존재여서는 안됩니다. 거친 광야를 지나며 무리를 이끌었던

모세가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도 정작 자신은 영광을 보지 못했듯이, 사제들

역시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들의 영광을 보는 것을 스스로의 영광으로

여기는 존재이어야 할 것입니다.

힌튼에서의 미사를 통해 저 자신의 회개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불뱀에 물린 백성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여 백성들을 살리는

구리뱀을 높이 치켜들었어야 하는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구리뱀으로서

십자가에 박혀 높이 들어올려지신 그리스도를 보고 배우고 따라야 하는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제 자신 스스로가 들여 높여지기를 원했습니다.

겸손한 사제의 손에 의해 들어높여지는 그리스도를 만 백성이 보고 따를 것임을

머리 속으로만 이해했지 제 몸이 그렇게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힌튼에서의 미사는 끝이 났고 원래 오후 1시에 캘거리로 다시

돌아오려던 제 계획은 물건너가고 우리 캘거리 일행은 힌튼 광야에서

저녁 7시까지 '잡혀'있었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을 힌튼 광야에 남겨두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캘거리에 돌아왔습니다.

힌튼에서의 은총의 시간을 보내고 지금 다시 제 삶의 자리에 돌아온 지금

주변의 많은 힘들고 외롭고 지친 영혼들과 마주 합니다.

저는 그 분들을 '광야인'이라고 이름붙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모든 '광야인'들과 함께 온 생애를 기꺼이 '광야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하느님 앞에서 결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풍요로운 종살이보다는 자유로운 광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의 길을 열어주소서....

아멘.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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