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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19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8 조회수34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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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누군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시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집에 있는 아버지는 뭔가? 혹시나 아버지가 이 질문을 하시거나 화를 내시면 대답하기가 참 힘들겠다고 걱정했었습니다. 그러면 둘 다 아버진데 하느님이 좀 더 큰 아버진가? 아니면 하느님을 그냥 아버지라 부르는 건가?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고 그냥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아버지라고만 계속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곤란한 질문은 다행히도 없었고, 아버지도 이 문제에 화를 내시진 않으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같은 고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분명 어머니고 형제들일텐데... 이 사람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게다가 찾으러 온 사람들인데 문전 박대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말로 하셔도 될텐데 왜 이리 서슬퍼런 말들로 사람들을 놀래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무시당한 듯한 가족의 입장에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족이 있다는 선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지금 함께 있는 모든 이들을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가족을 떠나 나와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열 두 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하시고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남기신 당돌하신 예수님이 말씀이 겹쳐지는 장면입니다. 성전이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 필요한 이들로 바뀐 것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애타게 찾았을 때 하셨던 말씀처럼 이순간 지금 나에게 어머니와 형제는 당연히 나에게 맡겨진 바로 이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어린 나이에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생각이나 말씀이 가족의 의미를 무시하거나 없애려 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세상에서 부모를 알았고, 그 부모에게서 키워졌으며 생의 마지막에도 그 어머니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예수님은 분명 자신의 삶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음을 아셨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이들을 어머니로 형제로 여기며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모든 이들이 구원을 꿈꾸는 아버지의 나라를 이 세상에 만드는 소명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심을 이해하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인해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이상한 문화들이 걱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하나에 독한 인생을 생각하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게되고 믿고 나서는 가족도 가족이 아니요, 하느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다 버려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다짐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명백히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하느님의 일이 사람의 관계를 잘라내는 식으로 설명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의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가족들에게 전해지고 설명되며 함께 품어 생각하도록 그리고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일 거라 생각합니다. 복음 속에 무시된 듯 보이는 그 어머니는 이 아들의 인생을 태어나기도 전에 품었으며 사는 내내 아들의 삶을 품에 안고 살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도 이 어머니의 모든 생을 끝까지 사랑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다며 무시하고 버린 부모가 내 훌륭한 이름 덕에 살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가슴 아픈 모습은 자신의 선택 때문에 존경받는 부모가 정작 나와는 전혀 사랑하는 관계로 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분명 진짜 가족부터 챙길 수 없는 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이기에 그 순간 만나는 모든 이가 바로 가족이되는 삶이기에 그것은 당연합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잔인한 결과를 생각하게 하는 슬픈 말씀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 길에 서서 한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를 안고 살아가는 삶. 모든 가족들이 이 사랑을 품어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라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사랑해야 하는 바로 눈 앞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와 기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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