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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21 조회수948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You shall indeed hear but not understand,
you shall indeed look but never see.
Gross is the heart of this people,
they will hardly hear with their ears,
they have closed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be converted
and I heal them.
(Mt.13,14-15)
 
 
제1독서 탈출기 19,1-2.9-11.16-20ㄴ
복음 마태오 13,10-17
 
몇 년 전 스위스 인터라켄에 위치하고 있는 융프라우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만년설이 있는 곳이지요. 워낙 많은 여행객들의 칭송이 자자한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안고 융프라우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인 융프라우 역까지 기차로 이동하더군요.

드디어 융프라우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귀가 멍해집니다. 그리고 무척 어지럽더군요. 빈혈이 있는 사람만 조금 힘들다고 했는데, 건강을 자랑하는 저 조차 약간의 어지러움으로 순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차가 왜 그렇게 느리게 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3,000m가 넘는 지역이기에 고산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체내의 산소를 저장하는 곳을 만들기 위해 혈압 내의 적혈구 수를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번에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몸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지요.

고산증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일을 못한다고 꾸짖는 상사는 없습니다.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공부를 하는데 모른다고 혼부터 내는 선생님도 없습니다.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모르냐고 혼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가르쳐주십니다. 그것도 어려운 말을 쓰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항상 비유를 통해 쉽게 말씀해주십니다. 즉,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구원의 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쉬운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큰 사랑을 가지고 쉽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신데, 문제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산증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또한 일이나 공부를 할 때에도 적응의 시간의 필요하듯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도 적응의 시간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적응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죽으면 그냥 적응이 될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알아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주실까요?

적응하는 것은 다른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몫인 것입니다.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느님 나라까지만 데리고 가시지 그 나라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동분서주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도전하지 않는 것은 일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일이 힘든 것은 우리가 감히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세네카).




재능이 오히려 더 큰 결함이 될 수도 있다


융프라우 정상

지난주에는 참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비가 멈춘 것입니다. 하도 외출을 하지 않다보니 몸이 찌뿌듯해서 너무 힘들었기에, 산책 겸 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혹시 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산을 챙기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잠시 뒤,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이동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산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비를 피하기 위해 빨리 이동을 했었습니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였기 때문에 우산이 필요 없더군요. 우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산이 없어서 아예 비 피할 곳을 찾아서 얼른 들어가신 분들은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종종 자신의 결함 때문에 넘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어 의심치 않던 재능에 의지하다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아닐까요? 우산이 비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이 구절이 떠올려집니다.

‘결함은 수시로 우리를 일깨워주지만, 재능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든다.’

재능이 많다고 부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결함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에 희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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