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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17주일. 2011년 7월 24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22 조회수432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7주일. 2011년 7월 24일 

마태 13, 44-46.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값진 진주에 비유합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보물 혹은 진주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고, 갖고 싶어 하는 대상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리면서 그것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비유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소유하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그 진가를 알면, 지금까지 추구해온 모든 가치들을 버리면서 그것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한 이론이나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여 각자 하느님의 나라를 스스로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현세에도 내세에도 하느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느님을 자기의 삶 안에 영접하여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고, 그분에게 많은 것을 바쳐, 그분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잘 사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높은 사람들 같이 우리가 잘 섬겨서 환심을 사야 하는 분도 아닙니다. 환심을 사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처세술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에게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키고 바칠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몇 사람에게 특혜를 주고 다른 이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생명을 사는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아버지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철저히 실천하였습니다. 그분은 그 사회 기득권자들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일, 곧 사람들을 고쳐주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일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하느님에 대해 알아듣고, 그 하느님의 일을 배워 자기도 같은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힌 보물 혹은 좋은 진주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의 진가를 알아들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까지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버리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최우선으로 찾아 나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있고, 그 함께 있음이 소중할 때, 그것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립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있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 정당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합니다. 부부가 함께 있고, 친구가 친구와 함께 있기 위해서도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그 희생은 그 함께 있음이 소중한 나머지, 본인들이 자유롭게 택한 것입니다. 함께 있음이라는 보물 혹은 진주를 얻기 위해 각자 자유롭게 선택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많은 것을 버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잃고, 비굴한 노예와 같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한 인간 개체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많이 버렸지만, 자녀와 함께 있고 자녀를 사랑하면서 더 큰 자유와 행복을 누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우리가 많은 것을 버리면서 얻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와 기쁨은 이기적인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서 하느님의 넓은 시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소유에 내 삶의 모든 보람을 걸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겠다는 복수심에서 벗어나 용서하는 자유로운 마음, 대가 없이 사랑하고 대가 없이 헌신하는 넓디넓은 마음, 이런 마음이 모두 하느님의 시야가 열어주는 넓은 지평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에게 허락된 풍요로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시야 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권력자들 같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심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자비롭고 더 자유로울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자비와 자유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면서 당신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셨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그 사실을 이렇게 해설합니다. “자유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갈라 5, 1). 참으로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상(無償)으로 베푸신 생명이라, 우리를 사로잡는 애착과 환상에서 해방되고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면서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베풂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힘들게 아주 드물게 베풀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베풂이 있는 곳에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습니다. 용서도 상대에게 새로운 미래를 베푸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베풂의 이야기가 자취를 감추면, 세상은 살벌하게 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아지고, 더 강해지기 위한 경쟁만 보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사할 일도, 감동할 일도, 자기 스스로를 희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작가의 말과 같이 ‘인간은 두 발 가진 동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 한 사람 잘 살고, 나 한 사람 더 많이 갖고, 도로상에서 나 한 사람 빨리 가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만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베푸심은 하나의 암호와 같이 우리 삶의 깊은 곳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 암호를 읽어내어 실천한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보물 혹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이기심, 욕심, 경쟁심의 대상이던 것을 모두 버리면서 비로소 그 실체를 나타냅니다.

 

그 베푸심의 발견과 영접은 나의 계획, 나의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베푸심이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그분의 숨결이 우리 안에 하시는 일입니다. 그 숨결은 땅속 깊이 묻혀 있는 보물과 같이, 보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지만, 그 숨결은 우리 삶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그 숨결을 찾아 돛을 달면, 나도 그 숨결과 함께 흐를 것입니다. 우리의 베풂은 보잘 것 없지만, 우리도 그 흐름에 합류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보물이나 진주와 같이 숨겨져서 혹은 암호와 같이 해독(解讀)을 필요로 하는 양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숨결이 우리를 움직이도록 비는 사람 안에 하느님은 그 생명의 아버지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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