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부활의 첫 목격자이고 증인입니다.
이런 성녀의 날을 교회가 기념으로만 지낸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너무 남성 중심적이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반성적 비판을 한 남성으로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를 보면서
누가 부활을 제일 먼저 볼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활을 목격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열렬하게 주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다.”고 하는
아가서의 그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신랑이 오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잠자다가
갑자기 신랑을 맞이하는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신랑이 오실 것을 깨어 대비하고 있다가
맞이하는 슬기로운 처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주님을 찾아 나섭니다.
복음에서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운 때’는
늘 주님과 만나는 때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아니 계셔 아직 어두울 때가
빛을 가장 갈망하는 때이고
빛이 시작되는 이른 아침, 새벽인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수난과 죽음도 공유합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요한을 빼고 남자는 다 도망쳤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겁이 많은 것 같지만
사랑하는 경우에는 다릅니다.
사랑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죽음도 사랑하는 사람과 갈라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음도 절망케 하지 못합니다.
십자가 밑에 같이 있었던 요한조차도
주님께서 돌아가시자
포기하고 더 이상
돌아가신 주님은 보려하지 않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아가신 주님을 뵈러 갑니다.
사랑의 마리아에게는
돌아가신 주님이 그저 시체가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는 님이시고
그래서 향을 바르고 애무하고픈 님이십니다.
사랑은 그래서 마침내 부활도 공유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만 보고 부활은 보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죽음으로 미리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사람에게 기대와 희망은
고통의 연장일 뿐이기에
죽음을 더 이상 공유하지 않고
그래서 부활도 공유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어도 사랑하고
그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
믿음과 희망을 두기에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에서 주님을 일으키실 때
그 부활도 공유하는 것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란
막달라 마리아에게 맞는 말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