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오늘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 세 사람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습니다.
예수님도 갖고 싶고~~
세상도 갖고 싶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면 세상 것을 다 소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데레사 성녀는
길에 있는 꽃도 꺽지 마라!
네가 꽃을 갖고 싶으면 먼저 하느님을 가져라!
그러면 세상 것은 다 너의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십니다.
첫 번째, 저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셨던 말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그거 알고 너 나 따라올 수 있느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희생을 각오해야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4대 희생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의 희생입니다.
두 번째, 절제의 희생입니다.
세 번째, 전교의 희생입니다.
네 번째, 육신의 희생입니다.
기도와 절제와 전교와 육신의 희생을 하고 나를 따라올 수 있느냐?
나를 따르려면 안락한 집도, 좋은 침대도, 맛있는 음식도...
나는 너희에게 보장해주질 않는다.
오로지 나를 따르려면 육신의 절제와 전교의 희생을 해야 하는데
너 그거 알고 나를 따라다니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것이냐!
짐승에게는 안식을 누릴 굴과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휴식처와 안식처를 가질 수 없을 만큼 희생의 길을 걸어야한다는 그 뜻일 겁니다.
정녕 올바른 신자생활을 하려면 하루 24시간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팔자를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팔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또 ‘희생, 바치겠습니다.’ 하고 세례 받을 때 분명히 우리들의 입으로 얘기했습니다.
왜 희생해야합니까?
그것은 억지로 끌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에게 속아서 사기 당해서 이 자리에 와있는 분 있습니까?
예수님의 열두제자들 역시 강제로 끌려 다니면서 3년 동안 징역살이 하듯이 노예생활 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고~~
예수님의 진실에 매혹 당했고~~
예수님이 제시하는 영원한 세상에 매료당해서~~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고~~
저 역시 예수님에게 잡혀서 그분의 매력에 빠져서~~
사제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진실 되게 살고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찌 노력과 희생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도 투자하고/ 돈도 투자하고/ 모든 걸 투자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서~~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
좀 더 안락한 세상을 살기위해서~~
우리는 모든 머리를 다 짜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고~~
어떻게 하면 시작한 사업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정 우리들은 이 세상 칠,팔십년...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을 편하게 살기위해서~~
투자한 그 많은 생각과 땀과 노력에 비해서~~
영원한 세상을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투자한 시간과 기도의 노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세상을 얻는데 투자한 노력에 10분의 1만이라도 하느님을 위해 사용한다면
다 聖人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이 세상 살아가는 노력에 비해서 10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1도 못쓰고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맨 날 우리의 신앙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오늘 주님께서는 나 따르려면 희생 각오해야한다.
우리 신자들의 4대 희생은
기도의 희생,
절제의 희생,
전교의 희생,
육신의 희생,
이것을 영적4대 희생이라고 얘길 합니다.
‘그거 각오했으면 나 따라 와라.’
두 번째,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자에게 뭐라고 얘길 합니까?
‘따르긴 따르겠는데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얼핏 들으면 무자비한 얘기를 하시죠?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따라 오려면 따라와.’
얼른 듣기에는 무자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지로 그 단어의 표현을 보면은 그 사람의 부친은 죽지도 않았고 죽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간단히 얘기하면 핑계를 대고 지금 당장 따르기를 미룬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신 따르려는 사람에게
두 번째 준 명령, 그 요점은....
모든 일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미루다가 미루다가 놓치면~~
목적하는 일을 이룰 수 없다고 얘기하십니다.
심리학자들이 얘기하기를 기분이 좋을 때 즉시 행동하지 않으면
행동을 일으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누군가에게 자선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바로 즉시 베풀어야 된다.... 그 뜻입니다.
누군가에게 화해를 청하고 싶을 때 즉시 청하십시오.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 때는 용서를 청하십시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에는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에는 미루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하느님에게 무엇인가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하십시오.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를 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분별을 줍니다.
지금 이순간은 니가 용서를 청해야 되는 순간이다.
지금 이순간은 다른, 세상 것 말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해야하는 순간이다.
지금 이순간은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묵주를 잡고 기도해야 되는 순간이다.
그때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영적분별을 하게 해주십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이것을 원하고 계신데~~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못합니다.
기도를 해야 될 순간에 우리들은 기도보다는
‘나는 봉사가 더 맞어.... 봉사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합리화를 시킬 때가 많습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 하신 이야기는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말아라.>
농사지어보셨던 분들은 소를 몰면서, 밭을 갈면서,
앞만 보면서 가야지....
자기 어깨너머로 자꾸 뒤를 돌아다보면~~
밭이랑을 곧게 갈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고자 하는 자는
석양을 향해 걷는 자가 아니라~~
여명을 향해 걷는 자 이기에~~
과거에 집착해서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심을 분명히 믿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조물주이신 창조주가 우리의 몸을 만들 때
눈도 뒤통수에다가 두개정도 박아주었더라면 훨씬 더 사는 게 편하지 않았을까?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도 바로 알 수가 있고~~
어떤 놈이 돌을 던져도 삭삭 피할 수 있고~~
너무너무 편리할 텐데 왜 앞에만 두개를 박아줬을까?
그것은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앞만 보고 살아라!
그 뜻입니다.
지금 두개가 있어도 바빠 죽겠는데 뒤통수에 두개가 또 있어보십시오.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고 바쁘겠습니까?
다 알아서 앞에만 두개 박아주신 겁니다.
‘앞만 보고 살아라!’
롯과 그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면서 롯은 분명히 얘기했지요!
앞만 보고 가야된다!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아무리 뒤돌아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도
절대 우리 뒤돌아보면 안 된다!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에 두고 온 그 세간과 집과 한평생 모았던 그 모든 재산....
그것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살짝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요약을 하면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다 예수님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자는 세 가지를 각오해야 됩니다.
첫 번째, 희생을 각오해라.
두 번째, 자꾸 핑계대지 말고
하느님이 너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바로 그 즉시 순명해라!
세 번째, 과거에 살면서 교만해지거나 비참해지지 말고....
앞으로 기쁘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 그래서 기쁨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려고 하는 자는 희생을 각오하고
양심을 통해서/ 때로는 사제의 말씀을 통해 얘기하시는...
하느님이 네게 원하는 것.
순명하고/ 과거에 살면서 징징거리고 살지 말고
앞만 보며 기쁘게 살아가는.....
따라서 희생과 순명과 기쁨의 삶을 사는 자는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고 세상을 소유할 수 있게 됨을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배티 성지 -photo by Y. 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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