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7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
49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 제자들이 “예 !” 하고 대답하자, 52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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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가 발견한 하늘나라를 얻기 위하여 투신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더해 주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말씀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리고 종말 심판 사상이 드러나는 그물의 비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의 두 비유의 흐름을 살펴보면 ① 하나는 보물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상인의 비유입니다. ② 농부는 보물을 우연히 “발견” 하는데 (44ㄴ절), 상인은 “좋은 진주를 찾아” 얻었습니다. (45절) ③ 농부와 상인은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삽니다.” (44ㄴ. 46ㄴ절)
이 비유들 안에서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데, 한 부류는 ‘우연히 보물단지를 발견’ 한 어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잦은 곳이라 피난을 갈 경우 집의 보화를 단지에 넣어 남모르게 밭에 묻어두고 떠납니다. 그러나 주인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때 보물단지는 오랫동안 밭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곤 했습니다. 그때 발견된 보물은 법적으로 밭주인에게 속하기에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44절) 이렇게 보물을 발견한 ‘기쁨’ 은 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애써 찾아다니다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 한 진주 상인입니다. (45 – 46ㄱ절) 고대 사회에는 인조 진주가 없었기에 진주가 매우 값진 보물로 거래되었습니다. 또한 상인이 발견한 진주는 그의 기대를 훨씬 넘었기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삽니다.” (46ㄴ절) 진주 상인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좋은 진주’ 라는 가치에 있습니다. 이처럼 우연히 발견하든 또는 애써 찾다가 얻었든 값진 보물을 발견한 이들은 누구나 한결같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투자합니다. 그들은 보물이 자신의 모든 소유와 바꿀 만한 최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하느님 나라’ 를 ‘하늘나라’ 로 표현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선한 통치로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 ‘기쁨’ 가운데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놀라운 가치를 대면한 제자들은 그 가치에 압도되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맞갖은 삶을 살아가고자 전존재를 바쳐 투신했습니다. (마태 19, 21; 마르 8, 34; 10, 32-39; 루카 9, 57 – 62 참조)
이처럼 하늘나라는 발견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그 가치에 합당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물의 비유가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 22, 11 – 14; 루카 14, 24 참조)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있는 어부든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면 식용과 비식용을 가려내지만, 특별히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으로 금지된 금기 식품법에 의해 더욱 엄하게 구분하여 가려냅니다. (레위 11, 10 – 12; 신명 14, 9 – 10) 그러므로 그물의 비유에 배경이 되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는 이런 분리 작업을 하는 어부들을 쉽게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마태 13, 48ㄴ절) 이런 장면을 떠올려보니 종말 심판 때 나는 어느 쪽으로 가게 될까하고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뒤 “너희는 이것을 깨달았느냐 ?” 하고 물으십니다. 비유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그 가치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선택과 결단으로 실천되는 삶 안에서 드러납니다. 마태오는 13장의 결어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절) 라고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곳간에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는 주인처럼 하늘나라의 가치를 익힌 제자들은 예수님의 언행에 비추어 행동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된 율법학자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비유를 듣고 깨닫는 모든 제자한테도 촉구하시는 바입니다.
묵상 (Meditatio)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을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으로 갈라놓습니다. 하늘나라가 보물과 진주처럼 진가를 확인하여 당장 소유하는 그 무엇이라면, 투신의 결단에 망설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기에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이는” (1코린 13, 12)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만 일상에 뿌리를 둔 믿음 안에서 하느님만이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 되시는 기쁨과 평화가 무엇인지 체득할 때, 우리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투신하는 결단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날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마태 13, 46ㄴ) 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해지겠지요.
기도 (Oratio)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 119, 105)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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