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로 치맛바람 들면 자식새끼 망치는 것은 오뉴월 밥 쉬는 것보다 빠르다 했는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치맛바람은 끈과 줄에 연연해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어미의 마음이야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 아마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자식들과 선생님 공양하러 다녔을 것이고 예수님께도 상당 부분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자식의 미래를 위해 단단히 약속을 받아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세상의 논리가 그대로 통합니다. 내 뜻은 보이는데 하느님의 뜻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모르니 어리석은 것을 바라고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 하느님 나라를 세상 논리로 살 수 없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 부랴부랴 당신 앞에 엎드린 이 어미의 바람이 눈에 훤하게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 ‘아이고 이 사람.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데. 내가 가는 곳은 예루살렘, 이제 죽을 일밖에 없는 곳으로 가는데, 무슨 자리 타령인고.’ 싶으셨겠지요. 그래서 무력하게 묻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 약을 원해야 하는데 독을 원하고, 생명을 원해야 하는데 죽음을 원하는 우리의 되풀이 되는 어리석음을 꿰뚫기라도 하시듯 당신은 한 어머니의 바람을 들어주십니다.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면서도 하느님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라야 하느님 나라 또한 잘 사는 보화가 됩니다. 끈과 줄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잡아야 할 유일무이한 끈이 있다면 하느님의 자녀라는 끈밖에는 없습니다. 아멘.
(실천) 하느님 나라의 방식을 다시 한 번 경청해 보고, 이 방식을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낼 것인지 궁리해 봅시다.
강부철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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