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통이라는 걸림돌 - 4) 가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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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웅열 | 작성일2011-07-27 | 조회수38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4) 가면
저명한 가톨릭 작가 라인홀트 슈나이더는: "인간 사회를 넘어 대자연과 동물 세계로 눈을 돌린다 할지라도 이 고통과 고난의 양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욱 황폐해 보일 뿐이다. 생태학적 조화를 넘어 잡아먹고 먹히는 양육강식이 그들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슈나이더는 그의 마지막 작품 ‘비엔나의 겨울’에서, "이 세상을 그렇게 온통 어둡게 만들어 버린 이를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파괴자와 억압자가 가증스런 가면 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해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슈나이더는 동물 세계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잔혹 한 현실을 비난하며 마지막 화살을 창조주께 돌린다. "예쁜 새가 그토록 아름다운 나비를 공중에서 낚아채어 잔혹 하게 가냘픈 몸통을 삼켜버린다. 잠깐에 지나지 않는 생명을 받아 이슬 한 방울만으로 즐거워하며 두 날개로 현란한 축제를 보여주는 무방비 상태의 나비를, 아버지의 손에서 불꽃처럼 태어 나 세상에 선물로 날아든 나비를 새들은 무참히 집어삼킨다." 장미나무를 파먹기 위해 딱정벌레가 얼마나 편리하게 창조 되었는가를 나는 무초트에서 작업 중에 알게 되었다. 딱정벌레는 어떤 장미도 사정없이 먹어버린다. 그런가 하면 암사마귀는 꽁무니가 아직 교미상태에 있는 수컷을 그 머리부터 먹어버림으로써 배를 양껏 채운다. 이것이 우주 창조의 조화란 말인가? 이러한 파괴의 지옥에서 누가 자비로운 아버지를 연상할 수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문학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세계는 다른 존재를 삼킴으로써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고통의 신음과 불안에 싸인 존재들이 모인 곳이다. 결국 사나운 짐승이 수많은 연약한 동물을 삼켜버린 묘지인 셈이고, 자기 보존을 위한 계속되는 살상이 이 세계를 이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8,22)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하느님께서는 직접 우리에게 성경으로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이 반듯이 읽어보고 의미를 깨달아서 실생활에 실천하라! 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 하게 됩니다.”(로마15,4)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나이 백 살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으며 아브라함은 순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자비로우신 모후 Pr. 단원 류 웅 렬 시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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