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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29 조회수903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Jn.11.25-26)
 
제1독서 1요한 4,7-16
복음 요한 11,19-27

어떤 돈 많은 부자가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나의 충실한 종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다. 내 외아들은 내가 가진 모든 것 가운데에서 딱 한 가지만을 골라서 가질 수 있다.”

이 부자가 죽은 뒤, 종은 변호사를 찾아가 유서의 내용대로 집행하기를 청했지요. 그래서 먼저 변호사는 외아들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단 한가지만을 상속하도록 유언하셨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아버지 종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자 이제 딱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상속받겠습니까?”

그러자 아들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 종을 상속받겠습니다.”

여러 가지를 상속받아야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딱 한 가지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버지의 종만 상속받으면 아버지의 재산 역시 모두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것을 가져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는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만 내 안에 계시다면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과 같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면서 정작 필요한 주님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 축일입니다. 마르타 성녀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리신 라자로의 동생이지요. 바로 그 장면을 우리들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찾아가신 때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나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나흘이나 지났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마르타 성녀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한 믿음을 물었을 때,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라자로의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아마 분수대의 물기둥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물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라 물기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바로 밑에서 계속해서 물을 뿜어 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물을 제대로 그리고 계속해서 뿜어내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멋진 물기둥을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계속 뿜어대는 물이 멋진 물기둥을 만들 듯이, 주님께 대한 믿음이 멋진 우리들 스스로를 만들어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을 더욱 더 굳건하게 만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근사하게 살 수 있다(톨스토이).




행동하는 사람


관계자 출입금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이런 글이 나를 막지 않을까 겁나네요.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문을 사는데, 신문을 파는 판매원의 서비스가 매우 거칠고 불친절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좋은 주말을 보내라고 인사까지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친구가 이렇게 묻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무례한데도 왜 그렇게 공손하게 대하나?”

그러자 이 사람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건 말일세, 그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내 행동이 바뀌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야. 난 반응하는 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이거든.”

우리들은 반응하는 사람이 되곤 합니다.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반응하면서 나의 행동이 바뀌어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끌려가는 삶을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내 의지에 맞게 행동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반응하는 사람입니까? 행동하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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