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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73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30 조회수33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7월 31일 연중 제 18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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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이루신 수많은 기적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기적이 오늘 복음에서 펼쳐집니다. 이 기적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은 남자만도 오천명이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천명을 기억한다는 것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엄청난 이들을 먹이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 분명해 보입니다. 늘어난 빵과 물고기의 양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있었고 그래서 이 기적이 일어난 이유가 예수님의 나눔으로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빵의 나눔으로 인해 생긴 기적이란 해석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신학적으로 성체성사를 미리 보여준 사건이다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 숫자에 너무 놀랐나 봅니다. 


그러나 정작 복음 속에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기적이 예수님이 당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두고 이야기의 전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상황은 긴박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외딴 곳으로 가던 중이기에 주님이 마음껏 당신의 능력을 펼쳐 보여주려 하셨다는 식으로 이 기적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래서 여유있게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이신 사건일 수도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날이 어두울 때 사람들을 돌려 보내려 했던 제자들의 마음은 굳이 금전적인 부족함만도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의 바쁜 이동과 함께 그분을 향해 육지를 달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실 때 그분이 만나신 곳은 한적한 곳이 아닌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걸음이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느 때처럼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기적은 사실 이 때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오천명을 먹인 기적이 크게 보이지만 그 시작은 이 많은 양들을 보시는 당신의 마음에서 그들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기적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지기도 합니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먼저 나누어 주시는 모범이 이 큰 사건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해석은 감동적이지만 기적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병자들을 낳게 하시는 기적은 되고 빵을 많이 하시는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어차피 가능한 일이었다면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보다 그 기적의 내용을 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 싶습니다. 


예수님의 바쁜 걸음에 몰려든 이들을 돌려보내려는 제자들의 설득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직언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나 이 사람들을 위해서나 장소는 마땅찮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주님을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배고픔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핑계를 댄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따라온 이들은 배고픔까지도 당연하게 감당해야 하는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다르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의 변명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구체적인 설명으로 우리는 이 상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 상황에 앞에 모인 이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일은 예수님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당시의 상황일 뿐 예수님은 기적을 해 보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들을 먹이겠다는 생각 뿐이십니다. 


기적은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바쁜 발걸음을 멈추시던 때부터 이 기적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걸음을 멈추게 한 그 가엾은 이들을 사랑하시기로부터 무엇이 되었건 예수님의 일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리고 오천명, 마지막으로 열 두 광주리를 떠올리며 이 기적을 기억하고 있지만 예수님에게 이 기적은 모인 이들의 수효도 상관이 없고 손에 들린 조금의 빵과 몰고기도 상관 없는 당신이 늘 하시던 그 사랑의 손길일 뿐인 것입니다. 남은 열 두 광주리는 그 자리에 누가 오든 모두가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오천명, 만명 아닌 그 이상의 숫자가 와도 주님이 내미시는 음식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숫자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이 기적의 이야기를 보면서 하느님께 목을 매며 애원하는 사람들조차 운명처럼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세상이기에 포기도 빠르고 당연히 수긍해야 하는 고달픈 삶의 모습들도 많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가진 모든 불가능한 조건들과 상관 없이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기적에서 주님이 우리의 목마름을 얼마나 가엾이 보시고 사랑해주시는지 그 기적의 크기가 아닌 그분의 마음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내며 우리의 당연한 수고조차 덜어주시려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빵이 오천명을 먹였다고 놀라는 사람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오천명의 빵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오천명은 각자 자신에게 전해지는 자신의 배를 채울 조금의 빵과 물고기로 배를 채웠다는 사실 말입니다. 



주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마음에 웃음지으며 그분의 성체를 행복하게 모시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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