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방선교회 본부에서는 매일 새벽 이웃에 사는 수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어느 날인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수녀님이 걸어가시는데 제가 차를 타고 휭하고
지나가 버린 적이 있었는데 하루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던 적이 있어
강론 중에 '이웃을 섬기는데 섬세하지 못했다'며 사과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 날, 미사 시간에 쫓겨 차를 타고 나가는데 또 다른 이웃 수녀원에 사시는
수녀님이 마침 길을 걸어가시기에 '때는 이때다'하는 생각이 들어 급한 길인데도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 반갑게 인사를 드렸답니다.
"아~~ 수녀님. 안녕하세요?"
"네, 신부님. 어디가시는 길인가 봐요?"
세상 사는게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요즘 이런 가볍지만 정감있는
이웃과의 인사 한마디로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미사에 늦게 생겨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휭~~하니 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그 수녀님이 정신없이 손을 흔들며 '신부님~~~'하고 소리를 치시는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저렇게 다급하게 부르실까?
미사에 늦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했지만 차를 세우고 좁은 골목길을 영화찍듯이 후진했습니다.
"네, 수녀님. 무슨 일이라도..."
"신부님, 차에서 뭐가 떨어졌어요."
"넷?"
뭔가 중요한게 떨어진게 틀림없는 상황이어서 급히 내려 확인해보니
뒷범퍼에 흠집나지 말라고 붙여 놓은 고무가 너무 낡아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수녀님, 떨어졌다는게 이거 맞아요?"
"네, 신부님. 그게 신부님 '차'에서 떨어졌어요. 분명히 봤어요."
으이그, 이건 차라리 모른척 해주시는게 도와주는거 였는데 이걸 어쩌라고 부르셨나이까?
미사가 급한 나머지 저는 그 낡아 헤진 고무를 길가로 휙--- 던지며
'수녀님, 다음에 뵙지요.'하고는 좀 의아해 하는 수녀님의 표정을 뒤로 하고 서둘러 길을 내려왔습니다.
미사 시간에 간신히 댈 수 있었고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성체를 마치고 잠시 묵상을 하는데, 갑자기 "왜 내가 아까 그 고무를 차에 실으면서
'너무 고맙습니다. 수녀님'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그 수녀님은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차가 폭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사제를 구했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싸여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도 있었을텐데......
으이그, 바보......
그 다음 날 미사 후에 저는 다시 수녀님들을 향해 '이웃을 섬기는데
더 섬세해 질 필요가 있는 제 부족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답니다.
그 수녀님과 같은 수녀원 식구들은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었던지 박장대소로 저를 용서하시더군요.
땅에 떨어진 물건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냐에 상관없이 이웃을 섬기는 마음이
좀 더 섬세하게 작용했다면 두 사람의 밋밋한 하루가 생명 넘치는 축제로
변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섬기는 감각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말할 것도 없구요.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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