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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02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2 조회수34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2.10-14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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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는 조금은 의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명인 율법과 연관시키는데 익숙하지만, 오늘 내용은 율법과 하느님의 말씀과 상관 없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비웃듯 주님께 묻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손을 씻는 행동은 분명 먼지가 많은 그 지역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히 손을 씻지 않았으면 예법에 어긋나고 고쳐야 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잘못이 분명하니 씻게 하면 그만일텐데, 주님은 뜻밖의 답을 하십니다. 주변에 듣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조상의 전통에 대한 질문이었기에 이 답은 예수님에게서 듣는 일상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기준에서 늘 대했기에 이 말씀 역시도 그리 연결하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공격한 질문은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전통이라 말하며 하느님을 연결하여 일상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일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께 바친다고 말하며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관습을 마치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인양 일삼는 그들의 잘못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이 질문 역시도 제자들이 마치 하느님께 불경의 죄를 지은 듯 말하고 있음을 바로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실제 현실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은 조상의 전통을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며 그 관습을 깨뜨리면 마치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처럼 여기고 실제는 하느님의 이름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정당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삶과 하느님을 멀리 떼어놓고 그분께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세상에서의 잘못을 덮어버리는 사람들의 해괴한 습관을 주님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모습은 그 옛날에는 없었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성당의 모습도 처음에는 없었고, 우리가 전례라고 부르는 것들도 처음의 모습대로는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을 거쳐 복음이 선포되고, 선교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화하며 우리 생활 안에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들은 하느님이 직접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들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준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준성사라고 부르는 교회의 전통으로 굳어져 하느님께 성사의 은총을 청하는 것들부터 교리로 형성된 많은 행동들이나 준칙들이 우리에겐 많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이 관습들이 하느님의 뜻과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더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봅니다. 사람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냈으니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되어 온 관습인데 그것이 하느님께 불경하고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이전에도 바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온 관습이 때로 하느님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도 형성되고, 거기에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해 오히려 더 악한 일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경고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같은 지적은 곧 현실의 커다란 장벽에 부딪힙니다.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아십니까?”


하느님을 배경으로 두고 조상의 전통까지 하느님과 연결시키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야기함이 우리 생활에서 나온 생각들과 충돌할 때 하느님보다 사람의 생각이 우선한다는 현실적인 지적입니다. 우리와 함께 사시는 예수님은 힘이 없고 그들을 가르친다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과 관련 없는 사실 하나에도 하느님의 위세를 부립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단호한 말씀으로 이 상황을 정리하십니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 배경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이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닮아가는데 잘못된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주님은 이야기하십니다.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라는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지적이십니다. 또한 미래의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도 들립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2천년 후의 우리들은 어떨까요?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 하느님을 믿어서 다른 것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느님이 들어주신다고 말하며 그들 앞에서 나를 따라오라 말하는 사람들. 이런 위험천만한 모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보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관계없는 것들을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처럼 만들어 엉뚱한 것으로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과 전혀 반대의 길을 걷게 하는 눈먼 인도자들은 지금도 세상의 흐름을 하느님의 섭리로 해석하고 그것에 잘 순응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위세를 지켜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걸어가는 삶이 서로에게 지탱이되고 위로가 된다고 믿을 수 있으나 그것은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다가 보지도 못하는 구덩이로 들어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심사를 건드린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배 속으로 갔다가 뒷간으로 나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승자들이 만든 틀로 사람을 판단하며 죄인와 선인으로 나누는데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승자의 삶을 즐기며 하느님을 이야기하다보면 정작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조롱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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