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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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8-02 | 조회수820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 마태오15,1-2.10-14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육신의 샤워보다는 마음의 샤워>
요란스럽지만 별로 영양가 없는 형식적인 행사에 참여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분위기가 부자연스럽고 경직되어 있는지 다녀오면 소화에 지장을 받을 정도입니다.
주요 인사들의 격려사나 축사, 치사를 들어보면 거의가 틀에 박힌 내용입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천편일률적입니다. 누군가가 대필한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왠지 어색한 말들의 잔치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오래 전부터 열심히 준비하지만, 별 효과도 없는 듯합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해 있노라면 마음이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왜 꼭 이런 식이어야 하나, 자연스럽게 좀 하면 어디 덧나나?’하는 의문을 감출 수 없습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 정겨운 마음의 나눔, 사랑의 눈길이 교환되는 사랑의 잔치가 되기보다는 다들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한 형식적인 행사가 의외로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극단적인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상한’ 행실을 수사하기 위해 예루살렘 최고 의회로부터 파견된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수사의 초점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공공연하게 ‘손 씻는 예식’을 어기는 문제였습니다.
식사 때 손 씻는 예식은 당시 유다 ‘전승’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쓴 율법과 성서를 ‘토라’라고 칭했습니다. 반면에 전승은 랍비들의 말과 그들이 결정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승은 점점 늘어나서 ‘미슈나’가 되었고, 후에 ‘탈무드’로 엮어졌습니다.
당시 이러한 전승이 유다백성들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랍비의 말들은 율법과 동등한 것으로 여겨졌고, 때로 율법 이상의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어떤 랍비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성서는 물입니다. 율법은 소금입니다. 전승은 좋은 포도주 혹은 값진 향료입니다.”
“모세의 계명을 거스르는 것은 허용되지만, 랍비들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합니다.”
당시 식사 때 손 씻는 예식에 대해서 대해서는 랍비들의 전승에 아주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1. 식사 전 후 뿐만 아니라 식사 중에도 손을 씻어야 한다. 2. 손을 씻을 때에는 그릇에 물을 담아 손에 끼얹어서 씻는다. 3. 손을 씻을 때는 물을 두 번 끼얹어야한다. 4. 손바닥으로 물을 퍼서 씻으면 안 된다. 5. 두 손으로 물을 받아 씻는다. 6. 손을 씻을 때는 손에 뭔가 쥐고 있으면 안 된다. 7. 정화의 의향을 지니고 손을 씻을 때는 손목까지 물을 적신다. 8. 만일 바른 손과 왼손을 따로 씻었다면 먼저 씻은 손에 나중에 씻은 손이 닿지 않게 한다.
보시다시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별 의미 없는 자질구레한 규정에 얼마나 목숨을 걸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불합리한 규정, 그러나 의무화시킨 규정으로 인해 결국 피해보는 사람들은 가난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번거롭고 쓸모없는 정화예식을 뜯어고치라고 외치십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의 샤워보다는 마음의 샤워, 내적인 쇄신을 강조하십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손만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는데 신경을 집중하지 말고 ‘진지한 내적인 반성’ ‘내적 성찰’ ‘내적 쇄신’에 힘쓰라. 눈앞에 있는 인간들, 유한하고 하잘 것 없는 인간들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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