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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4 조회수786 추천수8 반대(0) 신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민수 20,1-13

 

 

 

 

 

 

 

 

 

 

 

오늘 독서에서는 주님께서 그토록 어여삐 여기시던 모세를 꾸중하신다.
얼마나 노여우셨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실까.
모세는 뼈빠지게 고생만 하고 죽쒀서 남 준 꼴이다.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실제 이유는,
한 세대가 다 지나가도록(40년)

사막에서 떠돌아야 했을만큼
가나안 진입이 녹녹지 않았다는 역사적 상황이 있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갈 때쯤, 모세의 수명이 다 끝났다는 것이다.

미르얌이 수명이 다해 죽은 것처럼.


그러나 복잡한 시대적 배경이 무엇이든간에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성서 저자들은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한 이유를

후대의 백성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오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느 때처럼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모세와 아론에게 덤벼들었고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 대답을 듣고자 만남의 천막 앞에 엎드렸다.

주님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너무나 간결하다.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위를 쳐 물을 내라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은 늘 너무나 간단해서 어이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지팡이로 바다를 치라든가......요르단 강물에 목욕을 하라든가...너희가 주라든가..... ^^)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그 간단한 말씀을 믿는다.

이제까지 그분 말씀대로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주랴?" 

 

모세는 그러고나서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탕탕 쳤다.
주님의 말씀대로 많은 물이 콸콸 터져 나오고 백성과 가축들은 물을 마셨다.

 

그런데 주님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꾸중하신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백성에게 '반항자'라고 화를 냈다고 그러셨을까?
모세가 보통 때보다 조금 과격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도 시달리다 보면 성질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모세가 이보다 더 화를 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판을 받들고 내려왔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즐거워하던 백성을 보았을 때가 그랬다.

그날 모세는 하느님이 손수 쓰신 증언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가루로 내어서 백성에게 마시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까지 했다. (탈출 32장)
거의 정신이 나가고 눈이 뒤집혀버린 것같은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모세를 벌 주지 않았던 주님이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른가?

아, 가만히 보면 확연히 차이나는 것이 있다.

 

 

 


그때는 주님이 먼저 화가 나셨다.
모세는 백성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주님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산에서 내려왔다.

 

주님은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모세에게 다른 민족을 크게 일으켜 주겠다고 새롭게 제안을 하신다.

 

 

 

모세는 새로운 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만일 그랬다가는 주님은 다른 민족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하면서

자신에게 해주신 그 옛날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만일 자신의 청을 들어주기 싫으시다면

자신도 주님의 책에서 지워버리시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노기를 풀으셨다.

모세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기보다

어쩌면 모세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을지 모른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하느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놈이 잘못을 하여 야단을 쳐야 하는데,

큰 놈이 신나서 회초리를 찾아오면

그놈부터 때리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동생이 아플까봐 회초리를 감추고

형이 나서서 대신 빌며 매달리는 모습을 본다면

서슬 퍼렇던 부모는 슬그머니 용서를 하게 되고

큰 놈이 대견하고 든든해서

작은 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거다!

 

 

말하자면, 그 옛날의 모세의 분노는

주님의 의노(義怒)를 대신 전해준 대변인의 모습이었다.
예언자란 주님의 대변인이다.
그때의 모세는 중개자로서, 예언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는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물이 없다고 아우성대는 백성.

그것은 인간이 살기 위해 내는 당연한 소리이다.

 

주님은 인간의 생존의 욕구를 기꺼이 채워주시려고 하셨는데,

그들 중에는 노인들과 젖먹이들, 환자들과 말못하는 가축들까지...

아니 도대체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주님은 그들에게 화를 품지 않으셨는데....

모세와 아론은 주님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동안에 쌓이고 쌓인 분풀이를 한 꼴이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랴?'

하느님이 주시는 물을 마치 자기들이 주는 것인양 말하고 있다.

 

그 물은 하느님의 거룩함,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물이고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것이었다.

 

 

 


 

사실 므리바 샘에 대한 이야기는 본디 탈출 17,1-7에도 있으나
야훼계 + 엘로힘계 전승은 광야생활 초기에 배치하고
사제계 전승은 후기에 배치했다.
중복된 전승들 중 하나를 빼도 될텐데

성경의 최종편집자는 그러지 않는다.

모두 거룩한 전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마치 두번, 세번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걸 따지지 말고,

최종편집자의 의도대로

이런 사건이 모세의 후기에 또 있었다고 보자.

 


아무튼 성경저자는 세월이 흘러 미르얌과 아론도 죽고
모세 역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이유를

므리바의 이야기로 설명하면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이끌 지도자(왕, 사제, 예언자)들은
일반 백성보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갖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의도를 그대로 전해야 하며,
'제멋대로'(탈출 32,25) 

하느님께 반(反)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언제라도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쉽게 변절하고 어리석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해도 말이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도 마찬가지다.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시려는 주님의 의도를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언뜻 보면 인간적인 것 같으나,
주님의 길을 막는 것이 바로 사탄의 일을 돕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종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일반 사람들이라면 그런 혹독한 질책과 처벌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그 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권력, 재산, 학식, 위상만 높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과된 도덕적 기준 또한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소수의 계층이지만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졸업 동기들이 

사제품을 받고 나간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보좌신부로서 잘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말로 신나고 마음이 뿌듯하다.

하지만 강론대에서 원고를 집어던지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신자들에게 폭언을 하고...

강론, 기도 생활 엉망이라는..... 

소수의 신부들 소문을 들으면

왠지 모를 배신감과 분노가 솟구친다.

 

아무 공로 없는 나도 이런 마음이 드니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납작 엎드려 서약을 하던 그는 어디로 갔는가?

벌써부터 초심을 잃은 것일까?

원래부터 그랬는데 모르고 있던 것일까?

 

 

아무튼 민수기의 저자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며
그분의 뜻에 반하지 않도록

매사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야 모든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그래서

정치,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더욱 높게 실현되어야 할 가치이다.

 

 

한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 한달 동안 

이번에는 입학 동기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사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부제학교'에서....

 

내일이면 부제 학교도 끝나고

며칠 남지 않은 사제 서품을 위해

대피정에 들어갈 것이다.

 

부디 이들이 민수기 저자의 소리를

골수에 새겨넣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두 손 모아 기도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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