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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0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5 조회수305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9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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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그 상황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높은 산 위에서 변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저 모습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모습이 변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래 권위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루어낸 모세와 하느님 말씀을 전한 예언자 엘리야와 이야기를 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는 축일의 의미도 예수님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음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에 대해 영문을 모르는 제자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베드로는 정신 없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주님과 두 선조들을 그 자리에 모시려 합니다. 초막셋이 그가 생각해 낸 정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실제 예수님의 변모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주님의 변모가 이루어진 계기와 이에 대한 엇갈리는 제자들의 반응.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마무리 모두가 복음을 채웁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참 모습이 드러난 사건이라 의미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이 주님의 원래 모습이셨다면 주님께는 그저 당신의 원래 모습이었을 뿐 특별한 사건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주님께서 원래 당신의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받아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앞으로 당하게 되실 일을 의논하셨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를 통해 드러내셔야 할 아버지의 뜻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이 자리는 기쁨의 자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 드러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 어떤 설명도 부족할 정도로 해와 같이 빛나는 빛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 빛은 지금 당신의 죽음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하느님, 그리고 그 하느님을 죽일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한 이들의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자들은 전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전혀 다른 예수님의 모습에 도취되고 전설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 만으로 모든 생각은 멈추고 그들은 황홀함에 젖어 듭니다. 그들에게 이 자리는 그 자리 자체로 의미가 있어서 멈추고 싶은, 누리고 싶은 순간이 되고 맙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그 순간의 화려함을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그 속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저 예수님이 저런 분이셨구나라는 감탄사, 그래서 이대로 주저 앉고 싶은 생각이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마지막에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상황을 정리하십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높은 산, 거기에서의 놀라운 변화, 그러나 제자들의 본 것만으로 이 놀라운 일은 사라지고 맙니다. 제자들 외에 그 누구도 주님의 변하신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그들은 구름에 쌓여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을 눈 앞에서 다시 잃어버립니다. 주님이 단 한번 변하셨듯 함께 한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그런 모습은 단 한번으로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눈 앞에 다시 홀로 계시는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일으키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아버지가 제자들의 눈 앞을 가리시고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셨다면, 그 아들은 제자들의 입을 막아 버리십니다. 그래서 이 일은 없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주님은 그렇게 소수의 제자들의 기억에 남는 당신 모습을 그 제자들이 스스로 말하지 못하게 감추어 버리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변모사건은 빛의 신비에서 우리가 기억하듯 중요한 장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이 이야기속에 주님이 품으셨던 당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잘 기억하며 이 장면을 보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희생과 사랑을 이야기하시는 주님의 해처럼 빛나는 모습과 빛처럼 하얀 모습은 찰나의 순간처럼 당신 스스로 없는 것으로 만드셨기에 사실 그분의 이 화려한 영광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셨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이 이 명령을 지켰다면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당신의 본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신 셈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 이 이야기는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겐 한 사건의 기록처럼 새겨지지만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그 때와 같이 감춰지고 우리는 모르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사건이 주는 주님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셨던 이야기의 내용이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마음을 이미 이스라엘에 알리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이스라엘에게는 하느님을 알고 통하는 유일한 방법의 근원들에 당신의 뜻을 이미 알리신 일이 이 사건의 진정한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로 증언하시고 제자들의 눈을 가리시며 그들이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으로 산을 내려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제자들에게 입을 다물고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까지 침묵하며 지켜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사건을 대하는 모습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변모가 이 일의 중심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그 세명만이 누린 큰 은총의 시간이요 사건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여지가 있다면 제자들이 들은 것을 목격하며 느꼈던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스승이 죽음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제 손으로 하느님을 배반하고 하느님의 아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본보기로 죽인 십자가를 본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세상에 복수나 벌이 아닌 구원이 선포되는 하느님의 참 뜻을 알게 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이 주신 참 법이며, 말씀이시라는 것을 보게 된 사건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이 사건은 그래서 구름이 그러하듯, 예수님의 말씀이 그러했듯 우리 눈에서 사라지고 우리 입에서 사라져 나중에야 드러나는 놀라운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건은 일어났으나 그 사건이 후에 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자리에 있음에도 이렇듯 엇갈렸듯 우리가 주님께 대해 가지는 시각들도 한참을 어긋나 있는 듯한 모습을 많이 봅니다. 주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당신의 권위나 원래의 모습이 아닌 당신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사랑하시는 그분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빛나는 건 그분의 옷과 얼굴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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