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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것이 사실인가?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6 조회수403 추천수3 반대(0) 신고

12) 그것이 사실인가?

물론 고통을 통해 더욱더 사랑의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고통이 신적(神的)
영양제임을 체험할 수도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겪는 고통이 죄에 대한 징벌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라고
태생 소경을 두고 묻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께서는
‘자기의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셨다.”(요한 9,1-3참조)

예수께서는 인간의 고통에 맞서 싸우셨다. 병든 이를
고쳐 주고, 굶주린 이를 배불리고, 용기 잃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종교적,사회적으로 멸시 받는 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셨다.

고통이 단순히 징벌이나 약과 같은 것이었다면 예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위해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고난 받는 사람
들을 돕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약은 아무리 쓰더라도 당연히 삼켜야 하는 것처럼 벌도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식의 대답은
결과적으로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엄연히 불의가 존재하며 없어야 할 재앙이
있다. 또 분명 퇴치할 수 있는 전염병과 질병도 있다.

무기생산에 소요된 자금이
인류 복지를 위해 투자되었다면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고통을 징벌이요 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착취자는 계속 악덕을 일삼아도
될 것이고, 기아와 전염병을 없애려고 구태여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통을 징벌로 해석하는 논리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악에 대항
하지 않고 그저 용서받기만을 기대하게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제거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은 마땅히 퇴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감수해야 하는, 극복되지 않는 고난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저항과 귀의는 고통을 대하는 인간적이고도 그리스도교적인
자세이다. 폴 끌로델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소서!

그리고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소서.......”

19세기 초만 해도 교황청에서 나온 회칙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천연두 예방접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했다. 천연두가 하느님께서
친히 주시는 징벌이기에 그분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또한 1950년대만 해도 상당수 신학자들이 무통분만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해산의 고통은 하느님의 벌이요 따라서 인내하며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은 징벌이요 약이라고 하는 사람은 상처 위에 붕대를 감아줄
수는 있겠지만 그 상처를 근본적으로 해독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비 그리스도교적 태도요, 반동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하느님은 고통을 바라시지 않는다. 고통 자체는 선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란 말인가?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순명의 자세와 인내를 강조함으로써,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활기찬 모습을 그려볼 수 없게 합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하신 말씀에
머물어야 합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마태7,7-8)
모든 일에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아무리 작은 일에서도 또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열의를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
가고, 문은 닫혔다.”(마태25,3-10참조)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일을 찾자 열심히 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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